휘트니 휴스턴이 한국에 남긴 유산

사랑과 운명에 대해 함부로 얘기하면 안 된다. 특히 영원히 사랑할 거라는 말은. ‘팝의 디바’ 휘트니 휴스턴(Whitney Huston). 그녀는 영화 <보디가드>에서 자신을 위해 대신 총을 맞은 경호원(케빈 코스트너)을 위해 ‘전 항상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I Will Always Love You)라고 애절하게 노래한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그녀의 사랑은 영원하지 못했다.

호텔 욕조에서 숨진 채 발견된 그녀는 19일 장례식을 치르고 남편도 애인도 아닌 아버지 곁에 묻혔다. 장송곡은 자신이 부른 <보디가드> 주제곡이었다. 애증의 대상이었던 전 남편 바비 브라운은 장례식장에서도 홀대를 받았고, ‘영원한 경호원’ 케빈 코스트너가 소녀시절 디바 역을 두려워하던 그녀를 회상했다.

“난 한때 그대의 보디가드였습니다. 그런데 너무 빨리 가버렸습니다. 하늘로 가는 길에 천사들이 보디가드가 될 겁니다. 하느님 앞에서 노래할 때는 걱정하지 말아요. 당신 실력이면 충분하니까요.”

1992년 배우 케빈 코스트너와 휘트니 휴스턴이 주연한 영화 <보디가드>. 영화의 OST 앨범은 국내에서 약 120만 장의 판매량을 기록했으며 주제곡 ‘I will always love you’는 가장 큰 사랑을 받았다. ⓒ 영화 <보디가드>.

2010년 2월 가수 생활 25년 만에 한국 무대에 오른 그녀가 생각난다. 어린 시절 우연히 LP판에서 흘러나오던 ‘I Will Always Love You’를 듣고 휴스턴의 열렬한 팬이 됐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영혼의 울림이 있었다. 잠 못 드는 수많은 밤 그녀의 노래는 나를 꿈꾸게 하고 좌절케 하고 또 나를 위로했다.

한껏 기대했던 콘서트였건만 그녀의 무대는 실망스러웠다. 호흡은 불안정했고 음정은 위태로웠다. 그녀 특유의 힘있는 가창력으로 관객들을 압도하는 대신 가쁜 숨을 내쉬며 2시간 내내 보는 이들을 불안하게 했다. 디바는 몰락하고 있었다. 이유는 명백했다. 1992년 가수 바비 브라운과 결혼한 뒤 가정불화와 약물 중독에 시달려왔다.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대가로 목소리를 내어주기로 한 모양이었다. 이 위험한 거래는 결국 그녀의 목숨까지 앗아가 버렸다.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며 많은 사람들이 바비 브라운을 비난한다. 약물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휴스턴의 나약함을 탓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말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무엇이었을까? 약물 말고 그녀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다른 수단은 없었을까? 주변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는 건 불가능했을까? 톱스타이기에 더욱 어느 누구에게도 마음을 털어놓지 못한 채 홀로 외로운 싸움을 견뎌내야만 했던 건 아니었을까?

Whitney Houston 1963-2012

주변을 돌아보면 외로운 싸움은 도처에서 일어난다. 보건복지부의 2011년 정신질환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우리나라에서 130만 명 이상이 우울증을 앓았다고 한다. 이 중 성인 11만 명은 자살을 시도했다. 급격한 경제성장 과정에서 비롯된 빈부격차와 상대적 박탈감, 과도한 경쟁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요인이다. 세계 최강도 입시 스트레스로 청소년 우울증 발병도 심각하다. 경제성장과 한류 열풍으로 겉모습은 화려해 보이지만 마음의 병이 깊어진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다. 정신질환은 고혈압이나 당뇨병처럼 누구나 앓을 수 있고 평소 약물 치료와 관리만 잘해도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정신질환자를 ‘미친 사람’ 취급한다. 그래서 정신질환자 대다수가 혼자 앓거나 쉬쉬하며 진료를 받는다. 사회적 편견을 해소하기 위해 얼마 전에는 ‘정신분열병’이라는 병명 대신 ‘현악기의 줄을 조율한다’는 뜻의 ‘조현병’이라는 새 이름을 도입하기도 했다. 이름만 바꾼다고 해서 해결될 일일까?

2002년 휴스턴은 미국 <ABC>와 인터뷰하면서 “내 삶의 가장 큰 악마는 나 자신”이라고 말했다. 정상의 자리에서 대중 앞에 상처를 드러내는 대신 홀로 인어공주가 되기로 한 자신의 선택을 염두에 둔 표현이리라. 마음의 상처를 외면하고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려고만 한다면 상황이 악화할 뿐이다. 마음의 병을 하나의 질환으로 인정하고 치료할 수 있는 체계적 시스템과 사회의 따뜻한 관심이 필요하다. 히트곡 ‘I Have Nothing’에서 그녀는 이미 말하지 않았는가.

“(마음의) 문을 또 닫게 하지 말아요.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아요.”(Don’t make me close one more door. I don’t want to hurt anymore.)

휘트니 휴스턴 ‘I have nothing’ 라이브 보기

               

                       휘트니 휴스턴 대표곡 ‘I will Always Love You’ 라이브 영상 보기

희진킴

편집장. 음악과 사람, 공연에 대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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