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리스트 박세환] "플라멩코는 슬픔 아닌 기쁨 위한 음악"

[기타리스트 박세환] “플라멩코는 슬픔 아닌 기쁨 위한 음악”

‘플라멩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뭘까? 비장한 기타 연주를 벗삼아 고독한 얼굴로 열정을 쏟아 내는 무희의 춤사위 속에서,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한 집시들의 애환을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스페인을 대표하는 음악 플라멩코는 보통 춤을 위한 음악, 혹은 슬프고 무거운 음악으로 알려졌지만 플라멩코 기타리스트 박세환(34)씨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피날 팰리스(Final Feliz), 결국에는 웃는 음악이 바로 플라멩코죠.”

지난 1월 31일 바 알레그리아에서 첫 무대를 선보인 엘 라드론(좌) 한동빈 우) 박세환) ⓒ 김희진

박씨는 국내에서 플라멩코를 연주하는 몇 안 되는 기타리스트 중 한 명이다. 스페인 ‘리세우 왕립 음악원’에서 플라멩코를 정식으로 공부한 그는 사실상 최초의 리세우 플라멩코 학부 졸업생이다. 7년여에 걸친 스페인에서의 삶을 뒤로 한 채  2012년 9월 한국에 돌아온 그는 뮤지션은 물론 음악 감독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플라멩코를 전파하고 있다.

플라멩코는 국내에서 그다지 인기 있는 장르가 아닐뿐더러, 국내 뮤지션이 플라멩코를 연주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손에 꼽을 정도다. 지난 1월 말, 우연한 계기로 서울 홍대 인근의 ‘바 알레그리아’에서 그가 속한 밴드 ‘엘 라드론(El Ladron)’의 데뷔 공연을 볼 수 있었다.

개인 박세환이 아닌 밴드로서는 처음 선보이는 무대라고 했다. 현란하면서도 절제된 기타 연주, 주변 악기와 하나가 되어 폭발적인 에너지를 만들어가는 그의 무대를 보며 문득 박세환이라는 연주자, 나아가 플라멩코라는 낯설고도 익숙한 음악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공연 뒤 약 두 달 만인 지난 1일, 서울 을지로에 위치한 ‘커피 한약방’에서 그를 만났다.

“스스로에 대한 끝없는 갈증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죠”

플라멩코 재즈 기타리스트 박세환 ⓒ임종헌

빈티지하고 독특한 분위기가 돋보이는 카페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공사의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오후 7시가 한참 넘은 시각, 실내는 커피를 마시는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박씨가 스스로 인테리어와 디자인을 도맡아 했다는 이곳은 그가 평소에 매니저로 일하는 일터이자 연습실이다. 직접 내린 커피 한 잔을 건네는 그의 미소에서 넉넉함과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그가 처음부터 플라멩코에 매료된 것은 아니었다. 시작은 클래식 음악이었다. 7살 무렵부터 켜기 시작한 바이올린을 고등학교 시절 대학 진학을 위해 중단했다고 했다. 음악 대신 공부를 하겠다고는 했지만 그가 정작 빠져든 것은 다름 아닌 기타 음악이었다.

“음악을 안 하고 공부를 하려고 했어요. 공부를 하면서도 쉬는 시간마다 게리 무어라든지 에릭 클랩튼의 앨범을 듣곤 했는데 덕분에 기타를 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결국 독학으로 기타를 배우다 고3때 완전히 전향하게 됐죠.”

“바이올린을 좋아하긴 했지만 악보에 의존하는 클래식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기타는 같은 코드라 하더라도 연주법에 따라 소리가 많이 달라지게 되잖아요.”

결국 재즈 아카데미와 예술대학교를 거치며 원하던 재즈 기타를 연주하게 됐지만 스스로의 음악 세계에 대한 갈증은 지속됐다. 특히 팻 매스니의 음악을 들으며 기타 위주의 곡을 많이 연습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보여주기 위한’ 음악을 하는 데 회의감을 느끼게 됐다는 것.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음악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재즈를 하면서 서로 ‘내가 더 잘해’ 하며 싸우듯 음악을 한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어요. 솔로잉을 잘하기보다 뭔가 받쳐줬을 때 음악이 하나 되는 느낌이랄까? 그런 역할을 하고 싶었어요. 내 반주가 잘 되어야 나머지 솔로가 더 돋보일 수 있는 거죠. 그러다보니 전자보다는 어쿠스틱 음악을 해보고 싶었고, 근본적으로는 소리를 내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악기가 낼 수 있는 최상의 소리를 내고 싶어 다시 클래식 기타를 배우게 됐죠.”

박세환은 플라멩코 기타리스트에게는 ‘부지런함’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임종헌

“그때까지도 플라멩코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어요. 그러다 제가 배우던 교수님 한 분이 제게 플라멩코를 하라고 권유하셨죠. ‘넌 집시처럼 자유로운 음악을 할 때 좋아한다. 스페인으로 나가라’고요(웃음). 사실 그때 스스로 가장 원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어요. 제가 음악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배우는 것. 어려운 연주를 하지 않아도 남들이 따라할 수 없는 연주를 하는 것. 결국엔 평생 공부하고 연주하는 길인 거죠. 그래서 아무 사전 준비도 없이 스페인으로 떠났어요. 기타와 배낭만 달랑 하나 들고서요.”

2004년 5월, 플라멩코 기타를 배우기 위해 시작한 바르셀로나에서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기타 연주에는 꽤 자신이 있었지만 리세우 왕립 음악원 입학 오디션 당시 마에스트로의 심사평은 절망적이었다.

“너는 기초도 전혀 안 되어 있고 이 상태로는 우리 학교에 절대 못 들어온다. 5개월 뒤에 입학 시험이 있는데 이때 떨어지면 2년 뒤에 시험을 봐라.”

그는 이를 악물고 기타를 쳤다. 어학원에 다니는 시간을 빼면 말 그대로 하루 종일 기타 연습만 했다. 매일 14시간씩 기타를 치면서 노트북을 때려 부수기도 했다고. 피나는 노력의 결과는 달콤했다. 스페인으로 건너간 지 5개월 만에 리세우 왕립 음악원 플라멩코 기타 학부에 입학한 그는 6년의 학부 과정을 거쳐 플라멩코 작곡 석사를 수료했다. 정식 학위를 받기까지는 왕의 도장이 필요한 탓에 실제 졸업 이후에도 2~3년이 걸리곤 하는데, 오는 30일 학위를 받기 위해 스페인에 방문할 예정이라는 그의 입가에 만감이 교차하는 미소가 번졌다.

“플라멩코는 기쁨의 음악”

우리는 보통 플라멩코를 하나의 음악 장르로 여기곤 하지만 그는 “플라멩코의 다양성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직도 누구의 음악인지 몰라요. 누군가가 유명해졌기 때문에 그의 음악이 알려진 것이지 뿐이지 하나의 아이덴티티가 없어요. 인도에서부터 유랑 민족들이 헝가리, 루마니아, 프랑스 남부를 거쳐 피레네 산맥을 넘어서 바르셀로나에 있다가 이주자들이 많은 지역로 넘어가게 되죠. 1942년 전까지 안달루시아는 이슬람권에 속해 있었어요.

우리는 음계를 쓸 때 도레미파솔라시도 오름차순으로 쓰지만 플라멩코에서는 미레도시라솔파미 이렇게 내림차순으로 적어요. 이를 이슬람의 영향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어요. 사실상 플라멩코를 스페인의 전통음악이라고 할 수 없어요. 이 안에 모든 것이 집약되어 있는 거죠.”

총 34가지의 음악 장르로 이뤄진 플라멩코는 다양한 뿌리를 지닌다. 플라멩코의 많은 부분이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유래했지만 각각의 양식이 저마다의 특징과 매력을 간직하고 있다. 박씨는 그중 플라멩코 초급자를 위해 ‘솔레아스’라는 장르를 추천했다.

“솔레아스 역시 솔레아 드 알깔라 등 또 여러 갈래로 나눠져요. 우리나라에서 민요가 경기민요 남도민요 이런 식으로 나뉘어지듯요. 솔레아스는 기본적으로 천천히 들어야 하는 음악입니다. 플라멩코는 끌어냄에 대한 열정이지 아픔을 표현하지는 않아요. 그 순간에 집중해야 해서 그런 표정이 나오는 것이지 전혀 슬픈 음악이 아니에요.”

그는 또 플라멩코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알레그리아스’라는 장르를 들어보라고 말했다. 그는 “들어보면 알겠지만 이렇게 밝은 음악일수가 없다”며 “플라멩코가 아프고 슬픈 음악이라는 것은 편견”이라고 덧붙였다.

함께 해야 더 즐거운 음악

그가 직접 인테리어에 참여했다는 커피 한약방 카페 2층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박세환 ⓒ임종헌

스페인에서 정식으로 플라멩코 기타를 배웠지만 학교에 다니면서도 음악에 대한 갈증은 멈추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혼자 할 수 있는 연주가 아니라 같이 할 수 있는 연주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교내에는 상호 교류할 수 있는 학과가 없었어요. 그래서 퍼커션이나 노래, 춤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배웠죠. 춤을 알고 노래를 알아야 그를 위한 반주법도 배울 수 있거든요. 어떻게 박자를 맞추고 화합을 하는지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되는 거죠.”

“아무리 기타를 잘 치는 사람이라도 한 시간 동안 기타 연주만 듣기란 어려운 일이에요. 특히 생소하고 어려운 음악일수록 더 어렵죠. 10분 정도 가량은 관심 있게 듣지만 이 시간이 지나면 더 기대할 게 없어서 심심해지죠. 저는 같이 하는 쇼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런 걸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지금도 그런 부분이 모자라서 스페인에 매년 나가요.”

“스페인에 거의 혼나러 간다”는 그의 최종 목표는 한국에서 ‘경쾌한’ 플라멩코를 연주하는 것이다. 플라멩코의 불모지에 가까운 국내에서 스페인 음악을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즐거운 음악을 하며 플라멩코의 좋은 에너지를 나누고 싶다는 것.

개인 활동 이외에도 그는 퍼커션의 한동빈(46), 베이스의 송영욱(35)과 함께 현재 밴드 ‘엘 라드론’의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도둑’이라는 뜻의 밴드 이름에는 자신의 음악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고자 하는 열망과 집시킹즈 등 유명한 뮤지션의 음악을 마치 자신들의 노래처럼 연주하고 싶다는 포부가 담겨 있다. 지난 1월 첫 무대를 시작으로 밴드는 앞으로 더욱 활발한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가장 가깝게는 오는 10일 오후 7시 30분, 서울 합정동에 위치한 ‘청춘 쓰리고’에서 엘 라드론의 플라멩코를 만날 수 있다.

그에게 플라멩코란 곧 ‘숙제’라고 말한다. 평생 열정을 바쳐 풀어야만 하는 인생의 숙제라고 말이다. 자신의 연주를 통해 스페인 음악의 ‘즐거움’을 알리고 싶다는 기타리스트 박세환을 통해 플라멩코가 좀 더 친숙하고 기쁨을 주는 음악이 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