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꽃들에게 보내는 위로, 아이유 '꽃'

세상의 모든 꽃들에게 보내는 위로, 아이유 ‘꽃’

봄을 수놓던 꽃들이 자취를 감추고 거리는 온통 초록이다. 그 수많은 꽃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꽃을 그리워하는 봄의 끝자락에서 아이유가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를 발매했다. 자켓 사진 속 노란 원피스를 입은 그녀의 모습은 마치 오래 전 추억 사이에 끼워 두었던 한 송이 반가운 꽃 같다.

선곡이 대단하다. 타이틀인 조덕배의 ‘옛날 이야기’, 김창완이 피처링한 산울림의 ‘너의 의미’, 故김현식의 ‘여름밤의 꿈’까지. 앨범에 담긴 7곡 모두 실상 불후의 명곡들인지라 일단 믿고 들어볼 수 있지만, 이미 가창력을 비롯해 흔치 않은 감성까지 두루 인정 받은 아이유가 이번에는 홈런을 쳤다. 리메이크 앨범에서 흔히 경험하는 실망은 없었다. 오히려 소녀의 음색 치고 다소 신파적이라고 느껴졌던 애절함이 제대로 빛을 발했다.

그중에서도 유독 귀를 사로잡았던 곡은 故김광석의 노래 ‘꽃’이다. 봄이 지고 여름이 피는 사이, 지나간 봄의 전령들을 애도하는 느낌이랄까. 아이유의 ‘꽃’은 자연의 이치에 따라 흙 속으로 스려져 간, 혹은 우리의 사소한 부주의로 인해 피우지 못하고 잠들어야 했던 세상의 모든 꽃들에게 보내는 위로처럼 들렸다.

꽃이 지네 산과 들 사이로
꽃이 지네 눈물같이
겨울이 훑어간 이 곳
바람만이 남은 이 곳에
꽃이 지네 꽃이 지네
산과 들 사이로

꽃이 피네 산과 들 사이로
꽃이 피네 눈물같이
봄이 다시 돌아온 이 곳
그대 오지 않은 이 곳에
꽃이 피네 꽃이 피네
산과 들 사이로
꽃이 피네 산과 들 사이로
꽃이 피네 눈물 같이

그래서일까? 아이유의 노래를 듣고 있자니 그 동안 나의 무심함 속에서 봄을 마감한 꽃들이 문득 떠올랐다. 몇 달 전 잠시 알고 지내던 이에게 화분을 선물 받은 적이 있다. 봄이 막 시작될 무렵 선유도 공원을 거닐고 있을 때였다. 그는 선물이 있다며 작은 화분을 꺼내 밀었는데, 노오란 화분 안에는 빨간 꽃들이 이제 막 피어나고 있었다.

“무슨 꽃이에요?”

“아,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요”

그렇게 이름 모를 빨간 꽃은 내 품으로 오게 되었고 처음 며칠 동안은 간간히 들여다보기도 하고 햇빛을 쏘여주기도 하며 곁에 두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실낱같은 꽃잎들이 서로 끌어안듯 뭉쳐 있는 모양이 썩 마음에 들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 사람의 마음이 고맙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제대로 식물을 키워본 적이 없을 만큼 식물 돌보기에는 영 소질이 없는 편이었다. ‘이번에는 꽃을 죽이지 말아야겠다’ 다짐하며 의식적으로 화분을 돌보기 시작한 것도 사실 나 자신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다.

슬프게도 불안은 이내 현실이 됐다. 여행으로 잠시 집을 비우게 됐는데 그새 생그럽던 꽃들이 모두 말라 죽어버린 것이다. ‘일주일쯤이야 괜찮겠지’ 생각한 오만함이 문제였다. 바짝 마른 검은 흙덩이 위에 떨어진, 빛 바랜 꽃잎들을 보고 있자니 미안한 마음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꽃이 죽었다.

무심함만이 식물을 죽이는 건 아니었다. 무지에서 비롯된 욕심은 더욱 처참한 결과를 낳곤 했다. 대학원을 졸업할 즈음 학교 후배들로부터 ‘레티지아’라 불리는 다육식물을 선물 받았다. 그들은 나의 (비교적 높은) 목소리를 ‘초음파’에 빗대며, 작은 화분에 세계 정복의 꿈을 심어주는 깜찍함까지 선사했다. 다육식물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기에 인터넷을 뒤지며 식물의 특성을 파악하려고 했는데, 분명한 사실은 그녀(왠지 모르게 여성성을 부과하고 싶었다!)가 햇빛을 무척 좋아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나는 낮 시간 동안 그녀가 마음껏 광합성을 할 수 있도록 햇빛이 드는 창가에 화분을 놓아두곤 했다.

하지만 지나친 ‘배려’는 오히려 독이 되고 말았다. 한밤에도 에어컨을 틀지 않고는 잠들 수 없는 무더운 날이었을 것이다. 유난히 뜨거운 여름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는 동안, 나는 창가에 놓아둔 화분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문득 그녀의 존재가 뇌리를 스쳤을 때, 그녀는 이미 8월의 태양 아래서 뿌리까지 타들어 간 상태였다. 고개를 꺽은 채 늘어져 있는 레티지아의 모습을 발견하고서야 비로소 나는 알았다. 아무리 좋은 햇빛이라도 넘치면 모자라는 것만 못한다는 것을, 그 당연한 사실을 나는 그녀를 보며 망각하고 있었던 셈이다.

어쩌면 아이유가 부르는 ‘꽃’은 꽃 그 자체만을 의미하지는 않으리라. 향기와 빛깔에 취해 쉬이 곁에 두지만 무심함과 오만함 탓에 돌보지 않게 되는 것이 어디 꽃 뿐일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가 아니던가. 봄이면 찾아오는 꽃처럼 수많은 인연들이 우리의 인생에 다가오지만 결국 돌보지 않는 관계는 오래 지속될 수 없기 마련이다. 물을 너무 적게 주면 애정이 말라 떠나가고, 반대로 물을 너무 많이 주거나 햇빛을 지나치게 많이 쏘여도 내 마음만 넘쳐 이내 멀어지고 만다. 그에게 받은 화분 속 꽃들이 말라 죽어가는 동안, 돌보지 않은 그와 나의 관계 역시 시들어가고 있었듯.

아이유가 리메이크한 ‘꽃’은 1991년 발매한 故김광석의 2집 앨범 2번 수록곡이다. 20년이 넘도록 그의 노래가 끊임 없이 사랑 받고 재해석될 수 있는 건 곡 자체가 지닌 힘도 한몫 할 테지만, 시간이 흘러도 퇴색하지 않는 추억의 흔적과 인생에 대해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