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s Deaths 02 : 6월 9일 ~ 6월 15일

Week’s Deaths 02 :

6월 둘째 주 (6월 9일 ~ 6월 15일)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세상에 대한 많은 생각이 오고 가는 요즘입니다. 모든 이들이 그렇듯이 음악가도 사람인지라 죽음을 맞이합니다. 하지만 음악가는 죽어도 음악은 남는데요. 그 남겨진 수많은 음악은 지금까지도 세상을 가득 채우며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음악은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기도 하고, 슬플 때는 위로가 되어주기도 하고, 재미있게 즐길 때는 더욱 신나게 해주기도 하고, (이 경우는 흔치않은 경우이긴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을 우연히 만났을 때 그렇게 반가운 감정이 들게 해주는 것도 음악 때문입니다. 음악이란 형태도 없고 흔적도 안 남는 것인데도 어찌나 사람의 마음을 쥐고 흔드는지. 참 신기하다고, 때때로 생각합니다.

매주에 한번, 세상을 떠난 과거 음악가들의 주기를 되짚어보고 그들의 삶의 궤적, 그리고 현재를 사는 우리의 기억과 감성을 되살려보자는 취지에서 기획된 《Week’s Deaths》가 실립니다.

음악은 우리 이전에도 존재하고 있었고 여전히 우리 삶에 있어서도 중요합니다.

6월 10일

레이 찰스 (Ray Charles, 1930년 9월 23일 ~ 2004년 6월 10일)

[이미지출처] http://alive905.com.au/wordpress/wp-content/uploads/2013/04/raycharles.jpg

1930년 미국 조지아주에서 태어났다. 7살 때 녹내장으로 시력을 잃은 후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특수학교에서 점자와 음악, 피아노를 배웠다. 그는 블루스와 재즈, R&B, 가스펠에 영향을 받아 자신만의 음악으로 창조해내면서 <I’ve Got A Woman>, <Lonely Avenue>, <I Can’t Stop Loving You>, <Hit The Road Jack>. <Crying Time>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그는 ‘천재’, ‘소울(soul)의 대부’로도 불리면서 내는 곡마다 빌보드 차트를 점령했고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1981년에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등록되었으며 1986년에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도 입성했다. 생전에 그래미를 포함한 수많은 상을 받았다. 2004년 급성 간질환으로 사망했다. 향년 73세. 그의 전기를 다룬 영화인 <Ray>(2004)는 관객과 평론가들 모두에게 극찬을 받았다.

Ray Charles – I Can’t Stop Loving You

 

6월 13일

아르칸젤로 코렐리 (Arcangelo Corelli, 1653년 2월 17일 ~ 1713년 1월 8일)

[이미지출처] http://www.oae.co.uk/wp-content/uploads/2013/10/Arcangelo_Corelli.jpg

코렐리는 이탈리아의 이모라 부근 푸지냐뇨에서 1653년 2월 17일에 태어났다. 13세 때 최초의 음악 교육을 받았으며 바이올린 연주자가 되고자 로마를 비롯하여 독일, 프랑스 각지에 유학하여 공부와 연주활동을 하였다. 후에는 궁정의 음악사로써 혜택 받는 생활을 했다. 당시 바이올린은 아직 제대로 된 연주주법조차 없는 초기 형태의 악기였지만 코렐리는 이 바이올린의 활용법을 개척했을 뿐만 아니라, 60여곡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작곡함으로서 바이올린의 발전과 완성에 이바지했다. 이는 제미니아니, 비발디, 로카텔리를 포함해, J.S.바흐와 G.F.헨델에게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기품이 넘치는 선율과 균형이 잘 잡힌 형식미가 그의 작품의 특징이다. 코렐리는 검소한 생활을 하는 것으로 유명했으나 그가 타계한 뒤 막대한 재산과 다량의 고가 회화 수집품이 남겨진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했다.

Arcangelo Corelli – Sonate No. 1 in F major, Op. 3 

베니 굿맨 (Benny Goodman, 1909년 5월 30일 ~ 1986년 6월 13일)

[이미지출처] http://themusicsover.com/wp-content/uploads/2008/06/bennygoodman.jpg?w=300

시카고에 정착한 가난한 이민자인 부모 아래서 12남매 가운데 9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소년 때부터 클라리넷에 재능을 보여 고등학생 시절에 재즈계에 들어갔다. 30년대에 유행하던 신나고 경쾌한 스윙 재즈 시대에 전성기를 이룩하여 ‘스윙의 왕(King Of Swing)’이라고 불리고 큰 명성을 쌓는다. 여전히 흑백갈등이 심하던 시절임에도 자신의 악단에 흑인 피아니스트인 테디 윌슨(Teddy Wilson)을 고용한 일화는 유명하다. 베니 굿맨은 고전음악의 전당인 뉴욕 카네기홀에서 최초로 재즈연주를 한 연주자로 기록되고 있다. 재즈음악뿐만 아니라 클래식음악의 연주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보인 명연주자였다.

Benny Goodman – Sing Sing Sing

 

6월 14일

에스뵈욘 스벤손(Esbjörn Svensson, 19644월 16일 ~ 20086월 14일)

[이미지출처] http://www.neformat.com.ua/forum/attachments/jazz-blues/6765d1213793898-esbjorn-svensson-trio-e-s-t-e-s-t-esvensson2004_2.jpg

스웨덴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에스뵈욘 스벤손은 재즈 매니아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청중들에게 어필하는 드문 재즈 아티스트였다. 그는 스톡홀롬에서 60마일 떨어진 작은 마을에서 재즈 팬인 아버지와 아마추어 클래식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콜렉션과 어머니의 영향 아래 음악을 접했지만, 정작 그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지미 핸드릭스와 딥퍼플을 시작으로 한 락과 팝 음악이었다. 이후 에스뵈욘은 어릴적 락 듀오를 함께 했던 친구인 드러머 마구누스 외스트롬(Magnus Öström)과 베이시스트인 단 베르글룬트(Dan Berglund)와 함께 트리오인 EST(Esbjörn Svensson Trio)를 결성한다. 90년대 중반에서부터 그들은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를 순식간에 휩쓸었다. EST의 특징은 서정적이고 직선적인 멜로디와 클래식 음악의 사운드, 세련된 화성. 이 세 가지를 바탕으로 찬찬히 낮은 지점에서부터 자연스럽게 격정적인 감정의 고조를 일으키는 데 있다. 이 과정에서 다른 재즈 아티스트들이 기피하는 컬러풀한 조명이나 스모그, 이펙터나 기타 전자적인 사운드 또한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러한 ‘실험적’인 시도 덕분에 에스뵈욘 스벤손은 EST로써 15년간 각종 재즈 페스티벌에서 섭외 1순위가 될 정도의 명성을 구축했다. 그러나 에스뵈욘은 그의 나이 44살 때, 스톡홀름에서 스쿠버 다이빙을 하던 중 입은 부상을 치유하지 못하고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고 만다. 2002년의 인터뷰에서 에스뵈욘 스벤손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제가 작곡을 할 때, 저는 오직 이 질문만을 스스로에게 던집니다. ‘곡에 이야기는 충분한가? 곡의 이야기가 잘 흘러가는가? 자기복제가 아닌가?’ 그것이 어떠한 종류의 음악인지는 저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Esbjörn Svensson Trio – When God Created The Coffeebreak

 

6월 15일

알프레드 코르토(Alfred Cortot, 1877년 9월 26일 ~ 1962년 6월 15일)

[이미지출처] http://static.guim.co.uk/sys-images/Music/Pix/pictures/2011/5/25/1306343164282/Alfred-Cortot-007.jpg

스위스의 니용에서 태어난 프랑스의 피아니스트. 어릴 때 파리로 이주하여 파리 국립 음악원에 입학해서 수석으로 졸업한다. 데뷔 후, 바그너의 악극에 심취한 그는 피아니스트로서의 연주활동을 중지하고 바이로이트의 축전 극장의 부지휘자가 되어 바그너의 연구에 몰두하면서 각종 작품을 취급함으로써 바그너를 알렸다. 1905년에는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 바이올리니스트 자크 티보와 함께, 카잘스 3중주단을 결성하여 25년간에 걸쳐서 최고의 트리오로 자리 잡는다. 그는 계속해서 프랑스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로써 활약했으며 특히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전성기 때의 그는 두 말할 나위 없이 한 시대를 그은 프랑스의 명 피아니스트로 명성을 날렸다. 코르토는 연주에서 무엇보다도 음악의 외면적 효과보다도 내면의 주관성을 훨씬 중요시한 연주자였다. 특히 쇼팽, 슈만, 프랑크, 드뷔시의 곡에서 독특한 해석과 표현력을 보여주었다. 제 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에 공개적으로 협력했기 때문에 스위스로 추방되었다. 그 후 재기하는데까지 오랜 시간을 보냈고 예전만큼 열성적인 활동은 하지 못하였다. 62년에 84세로 타계했다.

 Alfred Cortot – Chopin Ballade No. 1 in G Minor, Op. 23

 

웨스 몽고메리 (Wes Montgomery, 1923년 3월 6일 ~ 1968년 6월 15일)

[이미지출처] http://cps-static.rovicorp.com/3/JPG_400/MI0001/388/MI0001388892.jpg?partner=allrovi.com

‘보스 기타(Boss Guitar).’ 재즈 기타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하드밥과 소울재즈의 시절인 50, 60년대에 독보적인 기타 연주로 재즈계를 대표하는 기타리스트로 불리게 되었다. 피크 대신에 엄지손가락을 이용하여 두텁고 중량감 있는 사운드를 들려주는 ‘썸 피킹(thumb-picking) 주법’과 ‘옥타브 주법’은 웨스 몽고메리의 전매특허 같은 것이었다. 피아노나 색소폰 같은 악기 뒤에서 리듬 악기 정도의 대접을 받았던 기타를 단번에 격상시킨 공로는 후대 재즈 기타리스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많은 가족을 부양해야했던 그는 이른 나이인 43세에 세상을 떠났다.

Wes Montgomery Trio – Days of Wine and Roses

아트 페퍼 (Art Pepper, 1925년 9월 1일 ~ 1982년 6월 15일)

[이미지출처] http://whyevolutionistrue.files.wordpress.com/2011/04/artpepper1.jpeg

본명 아서 에드워드 페퍼 2세(Arthur Edward Pepper,Jr.). 아트 페퍼는 1950년대에 미국 서부의 백인 재즈 뮤지션들이 주도하는 ‘웨스트 코스트 재즈’의 대부로 통한다. 편안하고 따스한 감성의 음악으로 재즈 역사에 큰 자취를 남긴 백인 색소폰 연주자이자 클라리넷 연주자로, 알토색소폰을 이용한 특유의 아름다운 음색과 즉흥연주에 뛰어났다. 그러나 쌓아온 명성과 위대한 음악 활동에도 불구하고, 30여 년간의 지독한 약물과의 투쟁은 그의 인생에 재활과 재기의 연속을 보내게 했다. 앨범은 <Art Pepper Meets the Rhythm Section>, <The Way It Was>, <Smack Up> 등이 유명하다. 아내인 로리 페퍼(Laurie Pepper)와 함께 자서전인 <Straight Life(직선적 인생)>(1979)을 출간했다. 1982년에는 그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인 <Art Pepper: Notes from a Jazz Survivor(아트 페퍼: 재즈 생존자의 수기 )>가 제작되었다.

Art Pepper-You’d Be So Nice to Come Home To

엘라 피츠제럴드(Ella Fitzgerald, 1917년 4월 25일 ~ 1996년 6월 15일)

[이미지출처] http://thehistorychicks.com/wp-content/uploads/2011/12/ella-fitzgerald.jpg

본명은 엘라 제인 피츠제럴드(Ella Jane Fitzgerald). 미국의 여성 재즈 가수. 빌리 홀리데이, 사라 본 등과 함께 20세기 중반을 장식한 여성 재즈 싱어들 중 한 명. 3옥타브를 넘나드는 가창력과 함께 ‘재즈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어린 시절 엘라는 모친과 함께 뉴욕 주 용커스로 이주하여 가난하고 비참한 유년기를 보냈지만 무용수가 되기를 꿈꾸었다. 그러다 우연히 아마추어 콘테스트에서 우승하면서 유명 빅밴드의 드러머 치크 웹(Chick Webb)의 그룹에서 전속가수로 데뷔하게 된다. 1939년부터 솔로로 활동하면서 여류 재즈가수로 큰 인기를 모았다. 이 시기에 음반사 버브(Verve)와 함께한 ‘송북 프로젝트’에 참여해 총 8장의 음반을 내면서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뜨거운 찬사를 받았다. 그녀가 지닌 뛰어난 스윙감각과 정감 넘치는 발라드, 그리고 능숙한 즉흥 스캣은 후대에 수많은 가수들에게 매우 큰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된다. 가수로 활동하는 59년 동안 14차례의 그래미상을 비롯하여 수많은 상을 수여 받았다.

Ella Fitzgerald – Summertime

 

김종규

음악과 글쓰기를 실천하고자 합니다. 앨범리뷰와 인터뷰 등을 씁니다. radio7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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