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시대, 소녀의 인권을 생각하다

메르스 시대, 소녀의 인권을 생각하다

메르스 공포가 정국을 뒤흔들고 있는 요즘, 지난 4일부터 일주일에 걸쳐 제4회 아랍영화제가 열렸다. 서울과 부산에서 동시 개최된 이번 영화제에는 칸국제영화제, 토론토국제영화제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 상영작과 아랍권 내 신인 감독 작품이 초대됐다. 메르스 여파 탓에 세간의 이목을 끌지는 못했지만 지난해보다 30% 증가한 8천여 명의 관객 수를 기록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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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디자 알살라미 감독의 영화 <나는 열 살의 이혼녀> 갈무리.

특히 여성 감독들의 약진이 돋보였는데 영화  <나는 열 살의 이혼녀(I am Nojoom, Age 10 and Divorced)>는 영화제 기간 동안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작품 중 하나다. 예멘 최초의 여성 감독 카디자 알살라미(Khadija Al-Salami)가 감독한 영화는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 아버지의 강요로 10살 나이에 결혼해야 했던 예멘 소녀 ‘누주드 알리(Nujood Ali)’의 실화를 담고 있다.

20살이나 많은 남편과 결혼해 낮에는 고된 일을 하고 밤에는 남편의 폭력을 견뎌야 했던 누주드는 남편을 상대로 이혼 소송을 벌여 예멘 사회의 조혼 문화를 수면 위로 드러낸 바 있다. 이를 계기로 예멘에서는 17세 미만의 소녀들을 강제로 결혼시킬 수 없도록 한 ‘조혼 금지법’이 의회를 통과하기도 했다.

역시 조혼 풍습의 피해자라는 감독은 영화를 통해 예멘의 조혼 문화를 고발하는 것은 물론,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악습의 현실을 조명한다. ‘종교적 당위성’과 ‘법적 정당성’ 사이의 좁힐 수 없는 거리 속에서 그녀는 예멘 소녀들의 인권을 수호하기 위해 인간으로서 지닌 보편적 양심에 호소해야 한다고 말한다.

영화의 음악은 프랑스 파리 출신의 저명한 프로듀서 티에리 데이비드(Thierry David)가 작곡했는데  아랍 음악과 뉴에이지의 조화가 생경하면서도 애틋하게 어우러진다. 영화의 음원이 아직 풀리지 않았으나 영화 엔딩 크레딧에 삽입된 Thierry David의 “Nothing to Forgive”는 사운드클라우드에서 들어볼 수 있다.

그러나 슬프게도 우리의 현실은 영화 속 이상보다는 누주드의 실제와 더 닮아 있는 까닭에 “소녀의 꿈을 빼앗지 말라”는 소녀들의 노래가 더욱 안타깝게 들릴 뿐이다. 조혼금지법이 결혼 연령을 법으로 규정하는 것에 반대하는 예멘 보수파들의 반발에 가로막힌 가운데 소녀들의 조혼은 여전히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 2010년 예멘 정부 통계에 따르면 예멘 여성의 4분의 1 이상이 15세 이전에 결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신부가 어릴수록 남편에게 순종하고 아기도 많이 낳을 수 있다는 믿음이 퍼져있기 때문이란다.

문화와 전통이라는 미명 아래 버젓이 행해지는 폭력을 목격하며 문득 메르스 공포로 인해 우리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현실과 문제의식마저 잠식당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예방을 위한 백신의 부재와 높은 치사율. 이 정체 모를 바이러스로 인한 사상자가 늘어가면서 ‘중동’이라는 세계 역시 막연한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극단적인 IS 조직의 난립으로 무슬림 전체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커져버린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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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는 열 살의 이혼녀> 갈무리.

조혼 풍습을 차치하더라도 중동 지역 어린이 인권 문제는 어제오늘일이 아니다. 분쟁의 최전방에서, 의료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풀지 못한 악습의 고리에서 가장 많은 희생을 강요당한 존재는 다름 아닌 어린이였다. 실제로 벤자민 뉴만 교수를 비롯한 일부 코로나 바이러스 연구 권위자들은 중동 지역 내 노약자에 대한 처우가 낮은 탓에 메르스의 치사율이 실제보다 더 높게 알려진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아랍 영화제는 막을 내렸지만 어느 때보다 한산한 거리, 마스크를 쓴 행인들 속에서 지금도 고통 받고 있을 소녀들의 노래를 떠올린다. 카디자 알살라미 감독이 말하는 것처럼 악으로부터 소녀들을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우리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악습을 철폐하기 위해 힘을 보태는 일일 테다. 메르스가 창궐하는 시대, 질병이 불러온 또다른 오해 속에서 우리가 우려하고 경계해야 할 문제마저 무지와 무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길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