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Deaths: 6월 둘째 주 - 레이 찰스,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 에르네스트 쇼송 외

Weekly Deaths: 6월 둘째 주 – 레이 찰스,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 에르네스트 쇼송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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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다만 음악은 여전히 존재한다.

본 내용은 위키피디아와 인터넷에 존재하는 여러 자료들을 토대로 정리한 것입니다.

사진출처: mtv.com

레이 찰스 (Ray Charles)
1930년 9월 23일 ~ 2004년 6월 10일, 향년 73세
가수/작사가/피아니스트
미국

1930년 미국 조지아주에서 태어났다. 7살 때 녹내장으로 시력을 잃은 후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특수학교에서 점자와 음악, 피아노를 배웠다. 그는 블루스와 재즈, R&B, 가스펠에 영향을 받아 자신만의 음악으로 창조해내면서 ‘I’ve Got A Woman’, ‘Lonely Avenue’, ‘I Can’t Stop Loving You’, ‘Hit The Road Jack’. ‘Crying Time’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그는 ‘천재’, ‘소울(soul)의 대부’로도 불리면서 내는 곡마다 빌보드 차트를 점령했고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1981년에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등록되었으며 1986년에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도 입성했다. 생전에 그래미를 포함한 수많은 상을 받았다. 2004년 급성 간질환으로 사망했다. 향년 73세. 그의 전기를 다룬 영화인 <Ray>(2004)는 관객과 평론가들 모두에게 극찬을 받았다.

사진출처: classical.net

에르네스트 쇼송 (Ernest Chausson)
1855년 1월 20일 ~ 1899년 6월 10일, 향년 44세
작곡가
프랑스

파리 시에서 태어난 프랑스의 작곡가. 어릴 때 법률을 공부했으나 이에 회의를 느껴 음악가로서는 다소 늦은 감이 있는 25세(1880년)에 파리 음악원에 입학하여 음악공부를 시작한다. 프랑키스트(Frankists)의 주요 멤버로서 국민음악협회의 창립에도 많은 힘을 기울였던 쇼숑은 프랑크의 순수절대 음악을 기초로 하여 그 위에 독자적인 색채를 만들어 나갔는데, 그의 악풍은 감각적으로 날카롭고, 우수에 찬 것이 많으며 또 자연에 대한 세련된 감수성이 넘쳐 있다. 음은 선명하고 아릅다고 정서는 청순하여 깊은 감동을 주는데, 가극, 피아노곡, 가곡, 교향곡 등 모든 분야의 작품 중, ‘바이올린과 관현악을 위한 시곡’은 특히 유명하다.

사진출처: naa.go.kr

김세형
1906년 ~ 1999년6월 11일, 향년 93세
작곡가
한국

평양에서 태어났다. 미국 채프먼 대학 음악부를 거친 뒤 웨스트대학원에서 수료받았다. 1928년에는 본격적인 음악공부를 위해 미국유학을 결행해 1935년 귀국하기까지 챕먼대학과 웨스턴 대학원에서 이론과 작곡을 전공했다. 1938년에 도쿄에서 제1회 작곡 발표회를 개최하였다. 1962년에는 제7회 예술원 공로상을 받았다. 그는 음악가로서도 교향시곡 ‘오셀로’, 작곡집 ‘먼길’ 외의 가곡이 있다.

사진출처: pianoacademy-eppan.com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 (Arturo Benedetti Michelangeli)
1920년 1월 5일 ~ 1995년 6월 12일, 향년 75세
피아니스트
이탈리아

바이올린 제작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브레시아 태생으로 변호사이면서 피아노와 작곡을 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3세 때부터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고 오르간도 배웠다. 4살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고 6살 때 연주회를 가졌다. 브레시아의 벤투리 음악학교에서 밀라노 음악원으로 진학하여 안포시 주세페안포시(Anfossi Giuseppe)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1939년 제1회 제네바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때문에 그의 활동은 한때 중단되었으나 2차대전 후 영국과 프랑스 양국에 최초로 연주여행을 하였다. 이 연주의 성공으로 세계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는 완벽주의자였다. 협연할 지휘자와 의견이 맞지 않아 도중하차한다든가, 녹음이 완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인 승낙을 하지 않는 일이 빈번했다. 원천적으로 스튜디오 녹음을 좋아하지 않았다. 때문에 지금 남아있는 그의 음원의 대부분은 실황녹음이다. 명성에 비하여 음반의 수효가 많지 않은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는 끊임없이 자기의 음빛깔과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하여 국외의 연주회에서도 반드시 자기의 피아노와 조율사를 대동했다. 레퍼토리의 범위는 넓으나 특히 라벨 등 근대적 작곡가의 연주에 뛰어났다. 또한 아르헨티나의 여류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Martha Argerich)의 스승이기도 했다.

사진출처: wbur.org

베니 굿맨 (Benny Goodman)
1909년 5월 30일 ~ 1986년 6월 13일, 향년 77세
클라리네스트
미국

시카고에 정착한 가난한 이민자인 부모 아래서 12남매 가운데 9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소년 때부터 클라리넷에 재능을 보여 고등학생 시절에 재즈계에 들어갔다. 30년대에 유행하던 신나고 경쾌한 스윙 재즈 시대에 전성기를 이룩하여 ‘스윙의 왕(King Of Swing)’이라고 불리고 큰 명성을 쌓는다. 여전히 흑백갈등이 심하던 시절임에도 자신의 악단에 흑인 피아니스트인 테디 윌슨(Teddy Wilson)을 고용한 일화는 유명하다. 베니 굿맨은 고전음악의 전당인 뉴욕 카네기홀에서 최초로 재즈연주를 한 연주자로 기록되고 있다. 재즈음악뿐만 아니라 클래식음악의 연주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보인 명연주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