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Deaths: 6월 셋째 주 – 에스뵈욘 스벤손, 엘라 피츠제럴드, 알프레드 코르토, NRG의 김환성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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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다만 음악은 여전히 존재한다.

본 내용은 위키피디아와 블로그, 기사 등 인터넷에 존재하는 여러 자료들을 토대로 정리한 것입니다.

사진출처: allaboutjazz.com

에스뵈욘 스벤손 (Esbjörn Svensson) 1964년 4월 16일 ~ 2008년 6월 14일, 향년 44세 피아니스트/작곡가 재즈 스웨덴

스웨덴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에스뵈욘 스벤손은 재즈 매니아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청중들에게 어필하는 드문 재즈 아티스트였다. 그는 스톡홀롬에서 60마일 떨어진 작은 마을에서 재즈 팬인 아버지와 아마추어 클래식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콜렉션과 어머니의 영향 아래 음악을 접했지만, 정작 그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지미 핸드릭스와 딥퍼플을 시작으로 한 락과 팝 음악이었다. 이후 에스뵈욘은 어릴적 락 듀오를 함께 했던 친구인 드러머 마구누스 외스트롬(Magnus Öström)과 베이시스트인 단 베르글룬트(Dan Berglund)와 함께 트리오인 EST(Esbjörn Svensson Trio)를 결성한다. 90년대 중반에서부터 그들은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를 순식간에 휩쓸었다.

EST의 특징은 서정적이고 직선적인 멜로디와 클래식 음악의 사운드, 세련된 화성. 이 세 가지를 바탕으로 찬찬히 낮은 지점에서부터 자연스럽게 격정적인 감정의 고조를 일으키는 데 있다. 이 과정에서 다른 재즈 아티스트들이 기피하는 컬러풀한 조명이나 스모그, 이펙터나 기타 전자적인 사운드 또한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러한 ‘실험적’인 시도 덕분에 에스뵈욘 스벤손은 EST로써 15년간 각종 재즈 페스티벌에서 섭외 1순위가 될 정도의 명성을 구축했다. 그러나 에스뵈욘은 그의 나이 44살 때, 스톡홀름에서 스쿠버 다이빙을 하던 중 입은 부상을 치유하지 못하고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고 만다. 2002년의 인터뷰에서 에스뵈욘 스벤손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제가 작곡을 할 때, 저는 오직 이 질문만을 스스로에게 던집니다. ‘곡에 이야기는 충분한가? 곡의 이야기가 잘 흘러가는가? 자기복제가 아닌가?’ 그것이 어떠한 종류의 음악인지는 저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진출처: theguardian.com

알프레드 코르토 (Alfred Cortot) 1877년 9월 26일 ~ 1962년 6월 15일, 향년 84세 피아니스트 클래식 스위스

스위스의 니용에서 태어난 프랑스의 피아니스트. 어릴 때 파리로 이주하여 파리 국립 음악원에 입학해서 수석으로 졸업한다. 데뷔 후, 바그너의 악극에 심취한 그는 피아니스트로서의 연주활동을 중지하고 바이로이트의 축전 극장의 부지휘자가 되어 바그너의 연구에 몰두하면서 각종 작품을 취급함으로써 바그너를 알렸다. 1905년에는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 바이올리니스트 자크 티보와 함께, 카잘스 3중주단을 결성하여 25년간에 걸쳐서 최고의 트리오로 자리 잡는다. 그는 계속해서 프랑스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로써 활약했으며 특히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전성기 때의 그는 두 말할 나위 없이 한 시대를 그은 프랑스의 명 피아니스트로 명성을 날렸다. 코르토는 연주에서 무엇보다도 음악의 외면적 효과보다도 내면의 주관성을 훨씬 중요시한 연주자였다. 특히 쇼팽, 슈만, 프랑크, 드뷔시의 곡에서 독특한 해석과 표현력을 보여주었다. 제 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에 공개적으로 협력했기 때문에 스위스로 추방되었다. 그 후 재기하는데까지 오랜 시간을 보냈고 예전만큼 열성적인 활동은 하지 못하였다. 62년에 84세로 타계했다.

사진출처: allaboutjazz.com

웨스 몽고메리 (Wes Montgomery) 1923년 3월 6일 ~ 1968년 6월 15일, 향년 45세 기타리스트 재즈 미국

‘보스 기타(Boss Guitar)’ 재즈 기타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하드밥과 소울재즈의 시절인 50, 60년대에 독보적인 기타 연주로 재즈계를 대표하는 기타리스트로 불리게 되었다. 피크 대신에 엄지손가락을 이용하여 두텁고 중량감 있는 사운드를 들려주는 ‘썸 피킹(thumb-picking) 주법’과 ‘옥타브 주법’은 웨스 몽고메리의 전매특허 같은 것이었다. 피아노나 색소폰 같은 악기 뒤에서 리듬 악기 정도의 대접을 받았던 기타를 단번에 격상시킨 공로는 후대 재즈 기타리스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많은 가족을 부양해야했던 그는 이른 나이인 43세에 세상을 떠났다.

사진출처: allaboutjazz.com

아트 페퍼 (Art Pepper) 1925년 9월 1일 ~ 1982년 6월 15일, 향년 56세 색소포니스트 재즈 미국

본명 아서 에드워드 페퍼 2세(Arthur Edward Pepper,Jr.). 아트 페퍼는 1950년대에 미국 서부의 백인 재즈 뮤지션들이 주도하는 ‘웨스트 코스트 재즈’의 대부로 통한다. 편안하고 따스한 감성의 음악으로 재즈 역사에 큰 자취를 남긴 백인 색소폰 연주자이자 클라리넷 연주자로, 알토색소폰을 이용한 특유의 아름다운 음색과 즉흥연주에 뛰어났다. 그러나 쌓아온 명성과 위대한 음악 활동에도 불구하고, 30여 년간의 지독한 약물과의 투쟁은 그의 인생에 재활과 재기의 연속을 보내게 했다. 앨범은 <Art Pepper Meets the Rhythm Section>, <The Way It Was>, <Smack Up> 등이 유명하다. 아내인 로리 페퍼(Laurie Pepper)와 함께 자서전인 <Straight Life(직선적 인생)>(1979)을 출간했다. 1982년에는 그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인 <Art Pepper: Notes from a Jazz Survivor(아트 페퍼: 재즈 생존자의 수기 )>가 제작되었다.

 

사진출처: allaboutjazz.com

엘라 피츠제럴드 (Ella Fitzgerald) 1917년 4월 25일 ~ 1996년 6월 15일, 향년 79세 보컬리스트/영화배우 재즈 미국

본명은 엘라 제인 피츠제럴드(Ella Jane Fitzgerald). 미국의 여성 재즈 가수. 빌리 홀리데이, 사라 본 등과 함께 20세기 중반을 장식한 여성 재즈 싱어들 중 한 명. 3옥타브를 넘나드는 가창력과 함께 ‘재즈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어린 시절 엘라는 모친과 함께 뉴욕 주 용커스로 이주하여 가난하고 비참한 유년기를 보냈지만 무용수가 되기를 꿈꾸었다. 그러다 우연히 아마추어 콘테스트에서 우승하면서 유명 빅밴드의 드러머 치크 웹(Chick Webb)의 그룹에서 전속가수로 데뷔하게 된다. 1939년부터 솔로로 활동하면서 여류 재즈가수로 큰 인기를 모았다. 이 시기에 음반사 버브(Verve)와 함께한 ‘송북 프로젝트’에 참여해 총 8장의 음반을 내면서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뜨거운 찬사를 받았다. 그녀가 지닌 뛰어난 스윙감각과 정감 넘치는 발라드, 그리고 능숙한 즉흥 스캣은 후대에 수많은 가수들에게 매우 큰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된다. 가수로 활동하는 59년 동안 14차례의 그래미상을 비롯하여 수많은 상을 수여 받았다.

사진출처: 20timeline.com

김환성 1981년 2월 14일 ~ 2000년 6월 15일, 향년 19세 가수 가요/댄스 한국

대한민국의 가수. 1997년 남성그룹 NRG의 멤버로 데뷔했다. 댄스곡 ‘할수있어’로 데뷔. ‘사랑만들기’, ‘메신저’등 다양한 모습을 보이며 인기를 유지했다. 한중 수교 6주년 기념 공연을 계기로 중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했으나, 2000년 6월 당시 원인을 알 수 없는 바이러스성 급성 호흡기 질환으로 사망했다. 이후 NRG는 김환성이 없는 상태로 발표한 네 번째 정규앨범 중 ‘비(悲)’라는 곡으로 고인의 넋을 기렸다.

사진출처: polinews.co.kr

이은미 1987년 1월 17일 ~ 2011년 6월 19일, 향년 24세 가수 가요/트로트 한국

대한민국의 여성 음악 그룹 아이리스의 멤버. 경인방송의 프로그램인 “열정 가수왕”에서 대상을 받아 알려졌다. 2005년 당시 3인조였던 아이리스의 싱글 앨범 <Message of Love>로 데뷔하였다. 2011년 6월에 중고차 딜러였던 전 남자친구에게 흉기로 살해당했다. 이후 아이리스는 해체되었다.

사진출처: cmt.com

바비 헬름스 (Bobby Helms) 1933년 8월 15일 ~ 1997년 6월 19일, 향년 63세 가수/기타리스트 컨트리/락앤롤 미국

본명 로버트 리 헬름스(Robert Lee Helms). 미국의 컨트리 음악 가수. 인디애나 주 블루밍턴에서 태어났다. 블루밍턴의 지역 텔리비전 방송에 형제인 프레디와 결성한 듀오 ‘헬름스 브라더스(The Helms Brothers)’로 첫 활동을 시작하면서 이름을 날렸다. 그는 유명 컨트리 가수 어네스트 텁(Ernest Tubb)의 백보컬로도 활동하다가 솔로로 데뷔한다. 첫 솔로곡으로 ‘Fraulein’와 바로 몇 달이 지나 발표한 ‘My Special Angel’은 대히트를 쳤으며 1957년 각각 4월과 10월에 순위권을 장식했다.

1957년 크리스마스 이틀 전에 발표한 시즌송 ‘징글벨락(Jingle Bell Rock)’은 나오자마자 순식간에 차트에 진입했는데 빌보드 핫 100 차트에 21주 동안 6위까지 머물었다. 이후 5년 내내 크리스마스 시즌만 되면 ‘징글벨락’은 차트를 점령했다. 그 성공에 힘입어 바비 헬름스는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생전에 그는 오랜 시간을 자신이 태어난 인디애나 주의 마틴즈빌(Martinsville)에서 보냈다. 그의 나이 63세에 천식에 의한 폐기종으로 바비 헬름스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지금도 ‘징글벨락’은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울려 퍼지는 고전 캐럴송이 되었으며 수많은 가수들에 의해 다시 불리고 있다.

김종규

음악과 글쓰기를 실천하고자 합니다. 앨범리뷰와 인터뷰 등을 씁니다. radio7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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