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KA Twigs 내한 후기] 매혹의 역사를 새로 쓰다

[FKA Twigs 내한 후기] 매혹의 역사를 새로 쓰다

여신 강림. ‘여신’이란 표현은 너무도 진부하고 웬만해서는 잘 쓰지 않는 단어지만 에프케이에이 트윅스(FKA Twigs)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여신이었다. 지난 7월 29일, 서울 YES24 무브홀에서 열린 그녀의 첫 번째 내한공연은 ‘트윅스교’의 비밀스러운 축제 현장이었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완벽한 퍼포먼스를 펼친 트윅스는 국내 팬들에게 올여름 가장 섹시하고 매혹적인 70분을 선사했다.

공연기획사 페이크 버진이 창립 1주년을 기념하며 마련한 이번 공연은 개인적으로도 무척 의미 있는 무대였다. 재작년 즈음 우연히 ‘Water Me’ 뮤직비디오를 보고 사랑에 빠진 뒤 포스팅을 통해 정규앨범 <LP1> 발매 소식을 전하기도 하며(이상한 나라의 FKA twigs ‘Water Me’) 열렬하게 짝사랑하던 트윅스를 1년 만에 눈앞에서 볼 수 있다니! 공연장에 들어서기 전부터 나는 이미 트윅스교의 재물이 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저녁 8시, 공연 시작 한 시간 전부터 그녀를 기다리는 팬들이 무대 앞쪽을 사수하며 9시가 되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대기 시간 동안 공연장 내 냉방시설이 작동하지 않는 것인지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기다림은 길게만 느껴졌다. 그런 마음도 몰라준 채 그녀는 예정된 시각보다 30분이나 늦게 등장했지만 ‘여신의 강림’ 앞에 관객들은 더위도 기다림의 짜증도 잊은 채 환호하며 그녀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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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 Fake Virgin

본격적인 무대가 시작하기도 전에 그녀는 ‘미모’만으로 주변을 완전하게 압도시켰다. 어깨 길이의 곱슬머리를 한쪽 귀 뒤로 넘긴 그녀는 화려한 패턴이 들어간 스포티한 탑브라와 반바지, 망토를 걸치고 나타났다. 자신감 넘치는 미소로 관객들을 응시하는 트윅스의 등장만으로 객석에서는 “너무 섹시하다”, “진짜 예쁘다” 하는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공연의 초반부는 ‘Preface’를 시작으로 ‘Lights on’, ‘Video Girl’, ‘Pendulum’ 등 정규앨범 수록곡을 비롯해 ‘Water Me’, ‘Papi Pacify’와 같은 초창기 히트곡들로 채워졌다. 마치 인형처럼 완벽한 춤사위를 선보이며 노래하다가 ‘Pendulum’에서는 한 마리 고양이가 된 듯한 몸짓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가는가 하면, 객석을 향해 손을 뻗어 악수를 해주는 등 팬들과 함께 호흡하려는 적극성을 보여줬다. 특히 공연 내내 트레이드 마크인 양 관객들에게 부드러운 손길로 닿을 듯 말 듯 ‘손 밀당’을 시도했는데 그녀에게는 손짓만으로 사람을 ‘홀리는’ 기술이 있는 게 분명했다. 하긴, 뱀파이어(로버트 패틴슨)도 유혹한 그녀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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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크 버진이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한 FKA Twigs 내한공연 셋리스트

약 40분 가량 쉬지 않고 쇼를 이어 나간 그녀는 공연이 중반에 이를 무렵에야 처음 팬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영국 내음이 물씬 풍기는 영어를 구사하며 국내 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트윅스는 방금 전 무대를 압도하던 그녀가 맞나 싶은 의문이 들 정도로 수줍은 소녀와 같았다. 그녀는 “한국 팬들이 이렇게 와일드할 줄 몰랐다”며 넘치는 환호와 애정 공세에 기쁨을 표하기도 했다.

올해 글래스톤베리에서 완벽한 호흡을 보여준 트윅스와 벤자민 밀런

혼자서 무대 위를 휩쓸고 다니던 그녀는 벤자민 밀런(Benjamin Milan)을 무대 위로 불러 깜짝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스웨덴 출신의 벤자민 밀런은 트윅스는 물론 마돈나 등 많은 스타 뮤지션들과 함께 작업하는, 런던에서 가장 잘 나가는 보깅 댄서 중 하나다. 하이힐을 벗어 던진 맨발의 트윅스는 엘프를 연상케 하는 밀런과 함께 기예에 가까운 멋진 댄스를 선보였다.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연체동물처럼 팔을 뒤로 꺾으며 카리스마를 뽐낸 밀런은 트윅스가 깨뜨린 ‘섹시함의 미학’을 공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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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 Fake Virgin

사실 그녀는 우리가 매스미디어를 통해 규정하는 ‘여성적 섹시함’의 조건을 갖췄다고 말하기 어렵다. 풍만한 가슴이나 육감적인 엉덩이 대신 오랜 시간 춤으로 다져진 탄탄한 근육질의 몸매는 되레 중성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트윅스 역시 그간 인터뷰를 통해 “작고 어린애 같아 보이는 나 스스로를 성숙한 여자로 인식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럼에도 그녀의 육체에서 풍기는 그 숨 막히는 섹시함은 자기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 속에서 발현된 자신감과 자기 확신에서 기인한 것만 같았다.

그녀가 보여준 아름다움은 단순히 인형같이 생긴 비주얼이나 화려한 댄스실력에 있지 않았다. 기묘하고 이상한 매력. 그 어떤 것도 정해진 방식대로 따르지 않고 내면의 잠재력을 쉼 없이 개발하며 자신을 표현하는 그녀는 “이상한 것도 섹시할 수 있다(Weird thing can be sexy)“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해냈다.

지난 5월 뉴욕 브루클린에서 전석 매진을 기록한 트윅스의 ‘Papi Pacify’

‘Two Weeks’와 ‘How’s That’을 끝으로 트윅스는 약 70분간 이제 막 1집을 낸 가수의 퍼포먼스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노련함과 완성도 높은 무대를 보여줬다. 앙코르는 없었지만 아쉬움이 남지 않는 임팩트 있는 공연이었다. 댄서라는 강점을 활용해 아트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연출한 점 역시 특기할 만했다. 음악의 특성상 라이브 자체에 큰 기대감을 갖지 않았지만 사운드의 질적 측면 역시 놓치지 않으려는 점도 인상 깊었다.

다만 퍼포먼스 중심의 공연 특성상 공연장 뒤편에 위치한 관객들은 그 모습을 제대로 관람하기 어려웠다. 그 와중에 사전예고 없이 VIP관객, 게스트 및 언론 관계자들이 2층 관람석에 자리하면서 형평성과 자리에 대한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게다가 라운지 느낌의 세련된 공연장 분위기에 비해 에어컨디셔닝 상태가 좋지 못했다. 안 그래도 빽빽하게 밀집해 있는 관객들은 공연 전부터 땀에 젖어 더위와 답답함을 호소했고, 한 여성 관객은 공연을 기다리던 중 두 번이나 정신을 잃어 결국 무대가 시작하기도 전에 공연장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물론 이 해프닝의 원인을 당시 냉방 상태의 문제로만 돌리기는 어렵지만 꽤 값비싼 비용을 지불하고(현매 95000원이면 만만치 않은 가격이 아닌가) 아티스트를 기다리는 관객들을 위한 공연 주최측의 배려는 부족해 보였다.

공연이 끝난 뒤 땀에 젖은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콘서트가 아닌 사우나에 다녀온 행색이었다. 동교동에서 온 오영희(가명)씨는  “앞쪽에 있다가 너무 덥고 힘들어서 뒤로 나왔는데 퍼포먼스가 전혀 보이지 않아서 음악만 듣다 온 기분이었다”면서 “이번 공연은 반쪽짜리 만족감”이라고 솔직한 심경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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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 Fake Virgin

 이번 공연은 유럽 전역을 거쳐 영국 글라스톤베리, 일본 후지 록 페스티벌에 이은 트윅스의 여름 투어 중 하나로 진행됐다. 운영상 몇 가지 아쉬운 점을 차치하더라도 뉴욕에서 전일 매진 기록을 세운, 지금 가장 핫한 아티스트를 만나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징적인 무대였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굴레와 편견을 깨고 진정한 아름다움으로 서울을 매혹시킨 이상한 나라의 에프케이에이 트윅스. 또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유혹할 것인지 그녀와의 다음번 만남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