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로스, 가늘지만 짙은 10년을 보내고 이별을 고하다

자취하던 대학생 시절, EBS <스페이스 공감>은 잠 오지 않는 늦은 밤에 틀기 딱 좋은 프로그램이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은 어느 여름날에도 습관처럼 공감을 플레이했다. 침대에 비스듬히 기댔던 나는, 몇 분 지난 뒤 몸을 일으켜 모니터에 빨려들어갈 듯 집중했다. ‘소리로 칠한 그림’이란 타이틀을 단 밴드 로로스(Loros)를 처음 접한 순간이다.

보컬이자 리더 도재명과 기타리스트 진실이 팀을 결정한 지 딱 10년이 된 2015년 7월 29일, 로로스가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해체를 선언했다. 어떤 예고도 없었고, 흔히 이야기하는 ‘막공연’도 없다. 7월 24일 클럽 ‘타’에서 있었던 <BALLTA SHOW #3>가 로로스라는 팀의 마지막 무대다. 7월 내내 야근에 시달렸던 나는, 그 날 역시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 와중에 몰래 로로스의 ‘It’s raining’을 들으면서 아쉬움을 달래고 있었다.

마이너 중에서도 마이너랄 수 있는 포스트락 계열의 음악을 선보였던 로로스다. 10년을 이어가며 꾸준히 활동했기에 ‘이만하면 오래했다’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보다 ‘길게 쉬더라도 해체하지 않고 계속 팀을 이어갈 수는 없을까’라는 아쉬움이 더 큰 걸 보면, 생각보다 더 로로스를 좋아했나 보다.

7월 마지막 주와 8월 첫째 주는 음악적으로는 멘붕의 연속이다. 생각보다 훨씬 안좋았던 <팀 버튼 & 대니 엘프만 영화음악 콘서트>, 브로큰발렌타인의 보컬 ‘반’의 갑작스러운 죽음, 그리고 로로스의 해체. 그래서인지 로로스가 마지막 공식영상이 된 EBS <스페이스 공감> ‘기획특집 : 노래가 필요할 때’에서 부른 ‘Time’의 가사 한 대목이 깊숙이 와 닿는다.

오늘도 나 그대 꿈꾸며
한참을 헤매이다 눈을 뜨는데
차라리 다 꿈이길 바래
그 꿈의 끝에서 내 이름 불러주오. 그대여.

loros

로로스는 소위 말하는 ‘대중성’있는 음악을 하지 않았고, 공중파나 케이블에 자주 등장해서 인지도를 높인 밴드도 아니었다. 지난 10년 동안 활동했던 가수들을 모아놨을 때, 로로스의 영역은 얇디 얇을 것이다. 하지만 나를 포함해 로로스를 사랑했던 사람들에게는 얇을 지언정 절대 끝어지지 않을만큼 또렷한 한 줄기라고 믿는다.

10년 동안 함께 해줘서 고맙다. ‘밴드’라는 무거운 짐을 던진 멤버들이 좀 더 행복하기를 바란다.

새롬

날 때는 절대음감이었으나 지금은 그냥 노래 좋아하는 직장인 피아니스트를 꿈꾸다가 지금은 피아노처럼 키보드를 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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