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s Deaths 03 : 6월 16일 ~ 6월 30일

Week’s Deaths 03 : 6월 16일 ~ 6월 30일

Week’s Deaths 03 :

6월 말까지 (6월 16일 ~ 6월 30일)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세상에 대한 많은 생각이 오고 가는 요즘입니다. 모든 이들이 그렇듯이 음악가도 사람인지라 죽음을 맞이합니다. 하지만 음악가는 죽어도 음악은 남는데요. 그 남겨진 수많은 음악은 지금까지도 세상을 가득 채우며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음악은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기도 하고, 슬플 때는 위로가 되어주기도 하고, 재미있게 즐길 때는 더욱 신나게 해주기도 하고, (이 경우는 흔치않은 경우이긴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을 우연히 만났을 때 그렇게 반가운 감정이 들게 해주는 것도 음악 때문입니다. 음악이란 형태도 없고 흔적도 안 남는 것인데도 어찌나 사람의 마음을 쥐고 흔드는지. 참 신기하다고, 때때로 생각합니다.

매주에 한번, 세상을 떠난 과거 음악가들의 주기를 되짚어보고 그들의 삶의 궤적, 그리고 현재를 사는 우리의 기억과 감성을 되살려보자는 취지에서 기획된 《Week’s Deaths》가 실립니다.

음악은 우리 이전에도 존재하고 있었고 여전히 우리 삶에 있어서도 중요합니다.

6월 19일

바비 헬름스 (Bobby Helms, 1933년 8월 15일 ~ 1997년 6월 19일)

[이미지출처] http://s3.amazonaws.com/cmc_images/medium/EU/000/EU000005756.jpg

본명 로버트 리 헬름스(Robert Lee Helms). 미국의 컨트리 음악 가수. 인디애나 주 블루밍턴에서 태어났다. 블루밍턴의 지역 텔리비전 방송에 형제인 프레디와 결성한 듀오 ‘헬름스 브라더스(The Helms Brothers)’로 첫 활동을 시작하면서 이름을 날렸다. 그는 유명 컨트리 가수 어네스트 텁(Ernest Tubb)의 백보컬로도 활동하다가 솔로로 데뷔한다. 첫 솔로곡으로 “Fraulein”와 바로 몇 달이 지나 발표한 “My Special Angel”은 대히트를 쳤으며 1957년 각각 4월과 10월에 순위권을 장식했다.

1957년 크리스마스 이틀 전에 발표한 시즌송 “Jingle Bell Rock”은 나오자마자 순식간에 차트에 진입했는데 빌보드 핫 100 차트에 21주 동안 6위까지 머물었다. 이후 5년 내내 크리스마스 시즌만 되면 “Jingle Bell Rock”은 차트를 점령했다. 그 성공에 힘입어 바비 헬름스는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생전에 그는 오랜 시간을 자신이 태어난 인디애나 주의 마틴즈빌(Martinsville)에서 보냈다. 그의 나이 63세에 천식에 의한 폐기종으로 바비 헬름스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지금도 “Jingle Bell Rock”은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울려 퍼지는 고전 캐럴송이 되었으며 수많은 가수들에 의해 다시 불리고 있다.

 

 

Bobby Helms – Jingle Bell Rock
 

6월 21일

카미 (Kami, 1972년 2월 1일 ~ 1999년 6월 21일)

[이미지출처] http://static.minitokyo.net/downloads/30/49/304980.jpg?729236190

일본의 비주얼 록밴드 말리스 미제르(Malice Mizer)의 드러머. 활동명인 카미는 본명인 카미무라 우쿄에서 따왔다. 그는 국민학교 5학년 때부터 드럼을 배웠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밴드를 했는데 음악적으로 컬쳐 클럽(Culture Club)과 듀란 듀란(Duran Duran)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학교와 아르바이트, 드럼 연습으로 바쁜 학창 시절을 보낸 카미는 졸업 후 도쿄로 상경하여 펑크 음악을 하게 된다. 밴드 활동에 열중하던 중에 말리스 미제르의 기타리스트 마나(Mana)에게 멤버 권유를 받았으나, 처음에는 그들의 음악 스타일을 맘에 들어 하지 않아 대답을 미룬다. 하지만 세션으로 6개월 정도 참가하다가 이후 마음을 잡고 1993년부터 말리스 미제르의 정식 멤버가 된다. 말리스 미제르의 앨범 <Memoire>는 그 자신의 첫 앨범인 것이다.카미가 참가하였을 때의 말리스 미제르는 보컬과 건반을 담당하는 각트(Gackt)로 인해 독자적 세계관과 클래식, 록이 결합시킨 음악을 한층 강화하어 궁극의 비주얼계라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긴 머리를 휘날리며 드럼을 연주하는 카미는 곧 밴드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카미는 나비라는 상징에 집착했는데 팔에는 세개 이상의 나비 문신이 있고 “au revoir”의 뮤직비디오에서 나비 날개를 달고 등장했을 정도였다. 게다가 그는 전국시대 무장인 다케다 신겐에 심취해 매년 축제에 참가했을 뿐만 아니라 자살과 활복에도 관심을 가졌었다. 그런 카미는 1999년에 급작스런 뇌출혈로 27세라는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Malice Mizer – Regret

6월 22일

유수연 (1979년 7월 8일 ~ 2014년 6월 22일)

[이미지출처] http://img.imnews.imbc.com/news/2014/society/article/__icsFiles/afieldfile/2014/06/22/band_yoosooyeon1_600.jpg

한국의 록 밴드 시베리안 허스키의 보컬리스트. 오디션을 거쳐 시베리안 허스키의 멤버로 합류했다. 시베리안 허스키의 첫 등장 당시 라디오 프로그램 ‘신해철의 고스트스테이션’에서 신해철은 시베리안허스키의 데뷔곡 “도마뱀”을 극찬하며 하루 선곡 표의 전체를 시베리안 허스키의 곡으로 도배할 정도였다.시베리안 허스키는 정규 음반 포함 5장의 앨범을 발표하였으며 송골매 헌정앨범과 신중현 헌정공연 등에도 참여했었다. 2012년에는 KBS 공중파 티비 프로그램 ‘톱 밴드 2’에 출현해 오랜만에 대중들 앞에 섰다. 현대적인 블루스와 디스코 록 사운드를 추구하는 시베리안 허스키에서 유수연은 풍부하고 매력적인 보이스로 최근까지 수백 번의 무대를 소화해내며 많은 주목을 받았었다. 얼마전까지 공연 준비가 한창이었던 그녀는 오랜 우울증을 막지 못하고 안타깝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홍대씬은 소중한 보컬리스트를 잃었다.

 

시베리안 허스키 – don fantasy

6월 25일

마이클 잭슨 (Michael Jackson, 1958년 8월 29일 ~ 2009년 6월 25일)

[이미지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56492970@N07/5759638423/in/photostream/

천년 동안 가장 성공한 아티스트, 역사상 가장 성공한 엔터테이너, 팝의 황제(King of Pop). 풀네임은 마이클 조셉 잭슨(Michael Joseph Jackson). 본명의 이니셜인 MJ, 혹은 미들네임까지 포함한 MJJ로 불린다. 1958년 8월 29일에 인디애나 주 게리 시에서 태어났다. 제강 기술자이자 기타리스트인 아버지 조셉 잭슨(Joseph Walter “Joe” Jackson)과 클라리넷 연주자인 어머니 캐서린 잭슨(Katherine Esther Jackson) 사이에서 여덟 번째 아이로 태어났다. 마이클은 1968년 아버지에 의해 결성된 잭슨 파이브(The Jackson 5) 멤버로 합류하면서 본격적인 음악 경력을 시작했다. 그러나 잭슨 파이브는 소속사와의 갈등을 겪고 있었기에 마이클 혼자 팀을 떠나 Epic(현재의 Sony)과 계약을 하여 1971년에는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1980년대에 발표한 마이클의 ‘Beat It’, ‘Billie Jean’, ‘Thriller’ 등 많은 히트곡의 뮤직비디오는 당시 미국의 인종차별의식을 무참히 깼으며, 당시 비교적 새로운 텔레비전 채널이였던 MTV가 지금의 위치를 얻게 되는데도 큰 일조를 했다. 뿐만 아니라 솔로 음악가의 투어, 무대와 비디오 퍼포먼스를 통한 춤, 문워크와 같은 많은 복잡한 댄스기법을 대중화 시켰다. 잭슨의 독특한 사운드와 기법은 수 많은 힙합, 포스트 디스코, 컨템포러리 알앤비, 팝, 록 음악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이리하여 마이클 잭슨은 대중 예술계의 대표적인 인물로 오르게 된다.<Thriller>(1982)는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다. 그외 다른 앨범들도 하나 같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 중 하나이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두 번 헌액, 댄스 명예의 전당, 13번의 그래미 상, 그래미 공로상과 그래미 레전드상, 세기의 음악가와 1980년대 아티스트를 포함한 26번의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수상 등은 그 어떤 음악가보다 많은 기록이다. 솔로 경력 동안 13장의 빌보드 핫 100 1위 싱글을 남겼는데 역사상 남자 가수 중에서는 최고이다. 음반 판매량은 세계적으로 4억 장 이상을 기록했다. 박애주의자이던 잭슨은 39개 자선 단체를 후원한 것으로 2000년 기네스 세계 기록에 등재되었다.

마이클 잭슨의 음악은 여러 메시지를 담고 제작했다. “Heal the World”, “We Are The World”, “They Don’t Care About Us”, “Smooth Criminal” 등의 음악은 전쟁 반대, 인종차별 등 박애주의 의식을 담고 있다. 잭슨 파이브 시절 그의 목소리는 보이 소프라노에 하이 톤의 목소리였지만 솔로 데뷔 후부터 그의 목소리는 가늘고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스타일로 변했다. 당시 뉴욕 타임즈 등의 매체에서는 그의 목소리를 신이 내린 완벽한 목소리라고 극찬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의 지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평소에 아주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했는데 그 이유는 목소리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였다고 한다. 최상의 노래를 대중에게 들려주기 위한 그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마이클의 성형과 백반증에 관한 외적 변화, 인간 관계 등 사적인 부분은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2번의 성추행 사건에 휘말려 커리어에 큰 타격을 받는다. 1990년대 중반 아동 성추행 혐의로 기소되었고 법정 밖에서 2,500만 달러로 합의되었다. 2005년 아동 성추행 혐의를 포함해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받았다. 이후 ‘This Is It’이라는 콘서트 시리즈를 통해 컴백을 준비하고 있던 중에 2009년 6월 25일 프로포폴과 벤조디아제핀 중독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검사관은 잭슨의 개인 의사 코나드 머레이를 살인 용의자로 지목했고 결국 과실 치사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잭슨의 죽음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으며 추도식은 각국 방송국을 통해 생중계 되었다. 마이클 잭슨은 아직 발표되지 않은 곡이 100곡 이상이 있는데 자서전 집필자에게 말하길, ‘자녀들을 위한 유산으로 미공개 곡을 남길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2014년에는 마이클의 2번째 사후 앨범인 <Xscape>는 발매되었다. 현재까지도 마이클 잭슨의 음악, 댄스, 패션은 40년이 넘도록 세계 대중 문화에 큰 공헌을 하고 있다.

 

Michael Jackson – Billie Jean

6월 28일

호세 이투르비 (José Iturbi, 1895년 11월 28일 ~ 1980년 6월 28일)

[이미지출처] http://thehollywoodmuseum.com/admin/wp-content/uploads/2013/07/exhibit-jose-iturbi-1.jpg

 

스페인 발렌시아 출생. 일찍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 파리음악원에 진학했다. 이때 하프시코디스트 반다 란도프스카(Wanda Landowska)가 사사했다.이투르비는 1912년에 첫 해외 투어를 성공적으로 끝낸 뒤 1929년에는 미국 뉴욕에서 데뷔한다. 1933년에 멕시코 시티를 시작으로 미국과 영국의 주요 교향악단에서 객원지휘를 진행했으나 1936년에 스페인 트리니다드에 겪은 항공사고로 인해 부상을 입고 지휘를 그만할 것을 선언한다. 하지만 이후 로체스터 필하모니 관현악단, 발렌시아 교향악단를 이끄는 등의 활약을 하였다. 이투르비는 깊은 통찰력이 있는 지휘로 유명했지만 쇼맨쉽이 과하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는 당대 유명한 피아니스트 중 하나였다. 누이동생 암파로(Ámparo)와 짝으로 연주하는 피아노2중주로 정평이 나 있으며, 특히 “Gershwin: Rhapsody in Blue” 연주는 ‘거장다운 심도 깊은 화려운 작업물’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또한 이투르비는 영화에도 관심이 많았다. 영화 <Thousands Cheer>, <Anchors Aweigh>에 출연해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기도 했다. 그는 80세까지 꾸준히 활동을 해왔다. 안식년으로 정한 84세 때 심장에 이상을 겪은 후 5일 뒤에 병원에서 사망했다. 그의 이름을 딴 호세 이투르비 피아노 콩쿠르와 호세 이투르비 국제 콩쿠르는 큰 규모의 국제 콩쿨이다.

Jose Iturbi leading 18-person ensemble – Hungarian Rhapsody #2 (Liszt) 
 

6월 29일

팀 버클리 (Tim Buckley, 1947년 2월 14일 ~ 1975년 6월 29일)

[이미지출처] http://ccbaxter.info/timbuckley/wp-content/uploads/timlaughing.jpg

싱어송라이터. 워싱턴 태생의 이탈리아계 미국인이다. 어릴 적 팀 버클리의 가정은 음악을 좋아했는데 그의 할머니는 베시 스미스(Bessie Smith)와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를, 그의 어머니는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와 주디 갈란드(Judy Garland)를, 그리고 아버지는 행크 윌리암스(Hank Williams)와 조니 캐시(Johnny Cash)를 그에게 가르쳐 주었다. 1960년대 초 미국전역에 포크음악의 붐이 일었을 때 13세의 팀 버클리는 혼자 기타를 배웠다.
팀 버클리는 20세가 되기도 전인 1966년 데뷔 음반이자 셀프 타이틀인 <Tim Buckley>를 발표했다. 바로 얼마 뒤에 팀 버클리의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 받는 <Goodbye And Hello>(1967)를 낸다. 팀 버클리의 초기 음악은 완전한 포크 음악이었으나 갈 수록 스타일이 변형되어 사이키델릭, 재크, 펑크, 소울, 아방가르드 등을 접목 시킨 음악을 선보였다. 갸냘프면서 우수에 젖은 듯한 그의 목소리가 그의 음악의 특징이며 그의 곡 중에는 가사 하나 없이 보이스만으로 이루어진 곡도 있다. 그런 팀 버클리는 1975년 텍사스와 달라스에서 있었던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나 뒤풀이 후에 28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게 된다. 원인은 마약 과용이었다. 그로부터 22년 후, 1997년에 아들인 제프 버클리(1966년 11월 17일 ~ 1997년 5월 29일) 마저 미시시피 강에 빠져 이른 나이에 사망하게 된다. 이 비운의 부자 아티스트의 이야기는 2012년에 <팀 버클리에게 바침 (Greetings from Tim Buckley)>으로 영화화 되었다.
Tim Buckley – Song to the Siren

로즈메리 클루니 (Rosemary Clooney, 1928년 5월 23일 ~ 2002년 6월 29일)

[이미지출처] http://4.bp.blogspot.com/-2kVY62saTrI/USKCmE9Q_1I/AAAAAAAAWHY/WbSQ7QW1Mvg/s400/Rosemary+Clooney.jpg

미국의 가수이자 배우이다. 미국 캔터키 주 메이스빌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동생 베티(Betty Cloony)와 함께 클루니 시스터즈로 활동하며 이름을 날렸고 이후 독립하여 영화배우로도 활동하였다. 1951년에는 “Come On-a My House”를 발표하여 밀리언 히트, 이어서 “Botch-a-Me”, “Mambo Italiano”, “Tenderly”, “Half as Much”, “Hey There”, “This Ole House” 등의 수많은 히트곡이 있다. 또한 그녀는 능숙한 재즈 보컬리스트였는데 원숙하고 정렬적인 창법을 구사해 많은 인기가 있었다. 빙 크로스비(Bing Crosby)와 함께 출연한 <White Christmas>는 그녀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둔 영화.
 1960년대부터 로즈메리는 인기가 하락하여 우울증과 약물중독에 시달렸다. 1977년에 빙 크로스비가 제의한 본인의 데뷔 50주년 기념 공연에 로즈메리가 깜짝 출연하면서 그녀는 다시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로즈메리의 가족은 유달리 유명인이 많은데 클루니 시스터즈의 여동생 베티를 포함하여, 미국의 앵커이자 정치인인 닉 클루니(Nick Cloony)는 로즈메리 클루니의 남동생이며, 닉의 아들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배우인 조지 클루니(George Cloony)는 로즈메리의 조카이다. 로즈메리는 지독한 골초였는데 후에 폐암에 걸리고 만다. 2002년에 하와이에서의 마지막 공연을 하고 수술을 받지만 6개월 뒤에 사망했다. 그녀는 사망하기 전까지 새 앨범을 작업하던 중이었다.
Rosemary Clooney – SWAY 
 

6월 30일

박용하 (1977년 8월 12일 ~ 2010년 6월 30일)

[이미지출처] http://www.officiallykmusic.com/wp-content/uploads/2013/06/parkyongha.jpg

한국의 배우겸 가수. 1994년 <테마게임>으로 데뷔하고 연기자로 착실히 커리어를 쌓다가 KBS 드라마 <겨울연가>로 한국과 일본에서 큰 인기를 모았다. 이듬 해 일본에서 가수로 정식 데뷔하여 한국 남자 가수로는 처음으로 일본 오리콘 차트 10권에 오른다. 이후 일본 골든디스크에서 신인상, 이어서 4년 연속으로 골든디스크를 수상한다. 그 사이 한국에서도 가수활동을 병행했는데 드라마 <올인>의 주제곡 “처음 그 날처럼”은 드라마의 인기만큼이나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2008년 박용하는 5년 만에 한국 SBS 수목미니시리즈 <온에어>로 컴백, 한국최초의 주식 영화 <작전>에서 열연하여 평단과 관객의 큰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평소 자신의 굴곡 있는 삶에 힘들어 했던 그는 2010년 6월 30일에 자택에서 목을 매 사망했다. 향년 34세.  2013년에는 박용하의 전 매니저가 박용하가 죽은 후 일주일만에 박용하의 계좌에서 2억 4천만원을 빼내고 2600만원 상당의 유품을 훔쳐간 사실이 드러나 유가족에게 고발되었다. 박용하의 죽음으로 한국팬들 못지 않게 일본팬들도 많이 애도했다. 올해까지도 일본에선 각종 추모 행사가 진행이 되었다고 한다. 

 

 

박용하 – 처음 그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