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왜 '괴물'이 되었나

그는 왜 ‘괴물’이 되었나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의 영화 <씨티 오브 갓>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빈민촌에서 벌어지는 총격 사건을 다룬다. 마약을 거래하고 세력을 넓히기 위해 총을 사고판다는 이야기 구조는 일반적 갱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조직의 멤버들이 10살 남짓한 어린 아이들이라는 점에서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신의 도시’에서 배를 곯으며 꿈과 희망을 잃은 아이들은 ‘총’을 통해 삶의 목표와 의미를 찾는다. 그 작은 손에 총 한 자루가 쥐어지고, 누군가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음식을 구걸하던 거리의 부랑아는 조직의 영웅이 된다.

영화 ‘City of God’의 한 장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개발도상국의 비극적 현실과 미래를 조명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비극은 세계 최강국 미국에서도 현실이 되고 있다. 자본주의가 점령하는 사회 속에서 실업난에 시달리는 가난한 청년들이 자국을 상대로 테러리스트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청년의 구직이란 ‘지겨운 기다림’에 가깝다. 끝없는 경쟁 속에서 자신의 차례가 다가오기만을 바라는 동안 희망은 곧 좌절로 뒤바뀌고, 좌절은 때로 분노가 되어 표출된다. 고통 속에 빠져 있는 그들에게 ‘특별한 이유 없이’ 따뜻한 밥을 먹여주고 잠을 재워주며 “너는 할 수 있다”는 새로운 희망을 심어주는 사이, 청년들은 어느 새 자신을 믿어준 테러집단의 충직한 동지요, 행동가로 변모한다.

이 서로 다른 세계에서 벌어지는, 동시에 지극히 닮아 있는 두 사건은 자본이 모든 가치를 결정짓는 신자유주의 세계의 비극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기술이 발달하고 금융이 몸집을 키워가는 동안 세계는 더욱 부유해졌지만, 경쟁에 뒤처지고 자본으로부터 소외된 이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다. 신의 도시에 사는 아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폭력을 배우기 전에, 미국이라는 소비사회에 방치된 청년들이 테러리스트가 되기 전에 사회가 그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배려했더라면 결과는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누군가를 해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사소한 도움으로 꿈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더라면 미래의 괴물은 곧 오늘의 희망이 되었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총기 난사사건의 임병장 범행동기 관련 뉴스

얼마 전 국내에서도 충격적인 총기 사건이 발생했다. 물론 군부대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전역을 3개월 앞둔 스물 한 살의 젊은이가 동료들을 향해 무자비하게 방아쇠를 당긴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가 소외된 이들에게 얼마나 무관심해 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관심병사’라는 이유로 주변으로부터 더 많은 돌봄과 배려를 받기보다는 오히려 무관심속에서 방치되고 차별 받아온 것은 아닐까? “너는 모자라고 불필요한 인간”이라는 낙인과 함께.

오직 군대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능력’만 있으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고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다고 가정한다. 일견 타당한 말이다. 그러나 사회 속에 존재하는 개인은 스스로 홀로 존재할 수 없으며 개인의 능력이란 사회가 만들어낸 제도와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폭력은 어떤식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고 총을 든 자들의 행위는 심판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생존경쟁에 밀려 테러리스트가 된 청년을 향해 ‘괴물’이라고 손가락질하기 전에 그가 총을 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고민해본 적 있을까. 남들보다 조금 부족하고 가진 게 없다는 이유로 소외된 수많은 사회의 관심병사들은 지금도 우리의 무관심 속에서 이웃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괴물이 되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Monster by Para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