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들의 멜랑콜리아 '다크사이드(DARKSIDE)'

괴짜들의 멜랑콜리아 ‘다크사이드(DARKSIDE)’

1948년 프랑스 음악가 피에르 셰페르(Pierre Schaeffer)는 파격적인 음악회를 선보였다. 이름하여 ‘소음 음악회’. 그는 프랑스 방송국에 실험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주변 소리를 재료로 한 5개의 연습곡을 발표했다. 예컨대, 기차역에서 들리는 온갖 소음들 – 기차와 철도의 마찰음, 때때로 울리는 경적소리, 기자의 엔진소리, 기차문이 열리는 소리 등 – 을 녹음한 뒤 박자와 리듬을 부여해 한 편의 음악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악음(樂音)과 소음은 다르다’는 인식이 팽배했던 당시 그의 노래는 음악이 아니라는 공격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그의 시도는 사운드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며 ‘구체음악’을 비롯해 현대 전자음악 발전의 토대가 됐다.

▲1948년 피에르 셰페르가 발표한 소음 음악회 중 하나인 <Etude Aux Chemins De Fer>

이처럼 끊임없는 실험과 도전은 장르를 불문하고 ‘새로움’의 기폭제가 된다. 때로는 상식을 뛰어넘는 ‘괴짜스러움’이 영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괴짜와 천재란 실상 표현이 얼마나 세련되느냐의 차이일 뿐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측면에서 이른바 천재뮤지션이라 불리는 니콜라스 자(Nicholas Jaar)를 주축으로 하는 일렉트로닉 밴드 ‘다크사이드(DARKSIDE)’ 역시 일렉씬의 괴짜들이라 명할 수 있겠다.

일렉트로닉 밴드 다크사이드의 니콜라스 자(좌)와 데이브 해링턴(우)

그들은 등장부터 화려했다. 니콜라스 자가 솔로 앨범 <Space Is Only Noise>를 통해 천재성을 증명하면서 그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던 탓도 있었으리라. 평단은 일렉트로닉 듀오 다크사이드의 출현을 열렬히 환영했다. 2011년 11월, 세 수록곡이 담긴 그들의 데뷔 EP는 음악 매체인 The Fader, Resident Advisor, Pitchfork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리믹스 작업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선보였는데 다크사이드가 편곡한 Daft Punk의 ‘Get Lucky’는 “오리지널보다 더 좋다”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다크 사이드 최초 데뷔 EP 수록곡 A1

▲ 다크사이드가 리믹스 버전으로 발표한 Daft Punk의 <Get Lucky>

지난해 10월 정식 데뷔 앨범 <Psychic>을 발표하면서 다크사이드는 일렉씬 내 입지를 확고히 했다. 놀라운 사실은 아무리 좋은 앨범이라도 쓴소리를 듣기 마련인데, 평단과 팬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이 앨범은 Ptichfork 앨범 리뷰에서 10점 만점에 9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받았으며 지난해 말 Resident Advisor를 비롯해 여러 매체에서 ‘올해의 앨범’으로 선정된 바 있다.

특히 앨범의 첫 번째 트랙인 <Golden Arrow>은 11분이라는 다소 긴 러닝타임의 연주곡인데, 음악잡지 Spin는 “11분간의 기악적 탁월함(11 minutes of instrumental excellence)“이라 소개하며 ”완벽한 곡“이라는 찬사를 쏟아냈다.

미니멀한 사운드를 바탕으로 여백의 소리를 함께 담아내는 다크사이드의 음악은 기본적으로는 일렉트로닉으로 분류되지만 디테일한 실험과 가능성으로 뒤섞여 사이키델릭, 앰비언트, 딥 하우스 등 정의할 수 없는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일각에서는 ‘제임스 블레이크’와 비교하기도 하는데 다크사이드의 음악이 한층 추상적이며 초현실적인 느낌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 다크사이드 정규 앨범 <Psychic>의 첫 11분을 차지하는 <Golden Arrow>

다크사이드를 논하면서 니콜라스 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보통 ‘니코’라 불리는 뉴욕 출신의 이 젊은 프로듀서(1990년생)는 떡잎부터 남달랐다. 칠레인인 그의 아버지 역시 얼터너티브 예술가로 활동했는데,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아버지에게 예술적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하다.

자는 14살 즈음 아버지에게 “일렉트로닉 음악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인상적인 점은 아버지의 반응이다. 아들의 말을 듣자마자 칠레에 있는 레코드 가게에 들어가 주인에게 최고의 일렉트로닉 앨범을 달라고 했다는 것. 그 앨범은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일렉트로닉 음악 프로듀서이자 칠레계 독일인 DJ 리카르도 비야로보(Ricardo Villalobos). 오늘날 미니멀 테크노씬의 주요인물 중 하나로 꼽히는 비야로보의 음악을 듣고 자라며 그는 음악적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미니멀 테크노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자의 음악은 한층 감성적이며 사색적이다. 스스로도 ‘블루 웨이브(blue-wave)’라 칭하는 그의 음악은 대체로 기존 테크노나 하우스 뮤직보다 살짝 느린 비트로 이뤄져 있다. 스무살이 되던 해 발표한 데뷔 앨범 <Space Is only Noise>는 피치포크 Best New Music 부분에서 8.4점, 가디언에서는 별점 5개 만점에 4개를 받았으며 Resident Advisor, Mixmag, Crack Mag등의 매체는 올해의 앨범 1위에 자의 앨범을 선정했다. 이중 수록곡 <Don’t break my love>는 2011년 말, 피치포크가 선정한 최고의 새로운 트랙(Best New Track)으로 꼽히며 니콜라스 자는 일렉트로닉 하우스계 독자적 스타일을 구축했다.

▲ 피치포크가 선정한 최고의 새로운 트랙(Best New Track)으로 선정된 <Don’t break my love>

비트적 측면뿐 아니라 사운드의 소재 선택에 있어서도 남다르다. 그는 17세의 나이에 발매한 첫 번째 EP에서 <Materials>란 곡으로 다양한 소재를 활용한 색다른 사운드를 선보였다. 프랑스 미술가 마르셀 뒤샹의 스피치 샘플을 이용한 곡 <Encore> 역시 흥미롭다.

“From the labyrinth beyond time and space seeks his way out to a clearing(시공간을 초월한 미궁에서 벗어날 자신만의 방법을 찾는다)”

읊조리는 뒤샹의 목소리와 피아노 리듬이 어우러진 이 곡을 통해 그는 다시 한번 피에르 셰페르의 후예임을 입증했다.

▲ 새로운 사운드가 돋보이는 니콜라스 자의 <Materials>

▲ 마르셀 뒤샹의 샘플을 이용한 <Encore>

니코는 ‘Clown and Sunset’이라는 자신만의 레이블을 만들어 자신의 작품은 물론 다른 레이블이 받아주지 않는 뮤지션들의 ‘기괴한’ 음악들을 소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괴짜는 괴짜를 알아본다고 했던가? 언젠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그는 Electronic Beats와의 인터뷰에서 영화 <블루벨벳>, <엘리펀트맨> 등으로 유명한, 이른바 ‘컬트의 왕’이라 불리는 미국의 영화감독 ‘데이빗 린치(David Lynch)’를 좋아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의 영화가 어둡고 섬뜩하지만 동시에 기묘하며 재미있다는 것. 그는 “음악 안에서도 괴짜스러움을 추구한다”며 “그 괴짜스러움이 템포를 바꾸고 여러 변화를 만드는 자신의 음악적 스타일과 연관되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솔로 활동을 지속하던 자가 다크사이드라는 밴드를 만들게 된 것은 브라운 대학교에서 비교문학을 공부하던 시절 동창생이자 재즈 기타리스트인 데이브 해링턴(Dave Harrington)을 만나면서부터다. 이전부터 니코 자체가 워낙 다양하게 활동하며 주목을 받았던지라 다크사이드에서도 니코의 영향력과 인지도를 무시할 수 없을 터. 그러나 다크사이드 내에서 해링턴이 차지하는 역할을 살펴본다면 자의 어마어마한 존재감에 그의 재능이 조금 과소평과된 측면도 있는 것 같다.

물론 자의 역량도 뛰어나지만 <Psychic>의 사이키델리아를 완성시키는 열쇠는 바로 해링턴이라는 것. 특히 수록곡 중 하나인 <Paper Trails>에서 해링턴이 극대화하는 다크사이드의 블루지엄을 목격할 수 있다. ‘필리닷컴(Philly.com)’과의 인터뷰에서 해링턴은 앨범 제작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사운드를 만듭니다. 또 우리는 우리가 말하고 싶은 것들을 이야기합니다. 그게 바로 저와 니코가 함께 만들어내는 음악의 본질이죠(We made sounds that we liked. We said things that we wanted to say. It’s the genuine product of me and Nico in a room).”

니코의 세계에 해링턴이 점을 찍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가는 다크사이드의 음악에 주목해야 하는 지점이다.

장황한 소개를 마칠 무렵, 이쯤에서 반가운 소식을 전하려 한다. 니코와 데이브, 이 일렉씬의 괴짜들이 오는 23일 서울 롤링홀에서 첫 내한공연을 가질 예정이다. 공연의 주최측인 Fake Virgin은 다크사이드의 음악을 두고 “달빛 아래서 벌어지는 우울한 잔치 같은 음악” 또는 “한번 경험하면 잊을 수 없는 우주를 유영하는 듯한 초현실적 라이브”라고 소개한다. 예매와 관련된 사항은 www.fakevirgin.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침묵마저 음악의 영역으로 확대시킨 음악가 존 케이지는 말했다. “어디에 있든지 우리가 듣는 것은 대부분 잡음이다. 그러나 잡음을 잘 들어보면 우리는 그 매력을 발견한다. 하나의 악기로서 말이다”

다가오는 다크사이드의 내한공연에서도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길 기대한다. 훈훈함이 물씬 풍기는 니코의 괴짜스러움과 해링턴의 진가는 오는 공연 후기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