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브라포니스트 이희경] “가장 솔직한 지금의 나를 연주하죠”

그녀를 처음 본 건 지난 여름밤 클럽 팜에서였다. 별 기대 없이 우연히 찾은 발걸음이었으나 그날 밤 양 손에 네 개의 채를 쥔 채 춤을 추듯 자유롭게 비브라폰과 ‘뛰놀던’ 이희경의 연주에 자꾸만 눈길이 갔다. 장르를 막론하고 국내 공연에서 비브라폰 소리를 듣는다는 것 자체가 희소하기도 했거니와, 무대 위에서 거리낌 없이 즐기던 이희경의 에너지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네이버 뮤직 On Stage with 전제덕

국내에서는 거의 유일무이하게 비브라폰을 연주하는 그녀는 아직 솔로이스트로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간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해 왔다. 하모니카 연주자 전제덕, 반도네온 연주자 고상지 등의 뮤지션들과 콜라보를 진행했을 뿐 아니라 재즈팝 밴드 ‘라이너스의 담요’, 실력파 걸그룹 ‘바버렛츠’, 기타리스트 ‘박주원’의 앨범에도 참여한 바 있다. 최근에는 자이언티(Zion.T) 첫 단독 콘서트 세션으로 영입돼 함께 무대를 꾸리기도 했다.

비브라폰이라는, 아직 조금은 생소한 사운드를 기반으로 우리의 음악 풍경을 한층 다채롭게 빛내는 이희경과, 그녀의 비브라폰이 궁금했다. 바람끝이 차던 12월 첫째 날 저녁, 삼청로에 위치한 그녀의 작업실에서 마더바이브 이희경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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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바이브 이희경

지금도 비브라폰보다 피아노 연습을 더 많이 한다는 이희경은 사실 피아노를 통해 음악을 시작했다. 5살 무렵부터 청소년기 내내 피아노를 쳤지만 정작 그녀가 매료된 것은 타악기였다. 우연한 기회로 마림바를 접한 뒤 타악기의 매력을 알게 되면서 예고와 서울대를 거치며 타악기를 ‘공부’했다고. 서울대 재학 시절에도 미국, 독일, 일본 등에서 투어 공연을 하며 클래식의 기반을 다졌지만 당시 그녀는 “자기의 자리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타악기를 전공하면 보통 오케스트라에 들어가는 게 보통이죠. 그렇지만 오케스트라 플레이어가 됐을 때 제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너무 작다고 생각했어요. 200마디 동안 가만히 있다가 심벌즈 한 번 치고.(웃음) 음악을 듣는 건 좋은데 이걸 왜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물론 재미있는 순간도 있지만 이걸 하면서 행복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어요. 오히려 좀 더 소규모로 해서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늘 막연하게 느꼈죠.”

이해하기 어려운 모던 클래식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 역시 그녀의 고민이었다. 클래식을 연주하면서도 피아졸라의 음악이나 보다 코드적인 것들에 더 많은 관심이 갔다. 그녀의 풀리지 않는 답답함은 결국 미국 유학으로 이어졌다. 특히 마림바나 비브라폰과 같은 건반 타악기에 흥미를 느꼈던 이씨는 국내에서는 황무지에 가까운 비브라폰 연주에 이끌리게 됐다고 했다.

보스턴 음악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그녀는 당시 음악을 느낄 틈도 없이 ‘받아들이는 것’에만 치중했다고 회고했다. 버클리 음대가 바로 옆에 있는 덕에 주말에는 버클리 사람들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고 석사 2학기 때부터는 버클리 교수에게 직접 비브라폰 레슨을 받기도 했다. 석사를 마칠 무렵에는 아예 버클리 음대에 입학할 요량으로 근처로 이사를 갔다. 그런 노력을 벗삼아 비브라폰 새내기였던 당시 장학금을 받으며 꿈에 그리던 버클리 음대를 다닐 수 있었단다.

“진정한 음악은 한국에서 연주자들로부터 배웠죠”

음악가로서는 실상 엘리트 코스를 밟은 그녀는 “실제로 음악을 제대로 배운 건 한국에 돌아와서부터”라고 말했다.

“거의 5년간 유학생활을 했는데 배울 것들이 많아서 좋기도 했지만 음악이라는 것이 꼭 지식으로 익혀지는 것은 아닌 것처럼 당시에는 너무 이론적인 측면에 치중하다보니 힘든 점이 많았어요. 특히 저는 계속 클래식을 해왔고 테크닉은 있지만 재즈에 대한 기반이 전혀 없어서 소화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고요. 그때는 어디에 써먹을지도 모르는 기술들을 무조건적으로 익힌 거죠. ”

“오히려 한국에 들어와서 더 많이 배운 것 같아요. 한국에서 ‘원코드 펑크’라는 걸 처음 해봤는데 리듬에 몸을 맡긴 채 하고자 하는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학교 다닐 때는 음악이 곧 일이었는데 지금은 다 내려놓고 하니까 훨씬 더 재밌게 할 수 있는 거죠. 이제서야 그때 배운 것들을 이해하면서 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네이버 뮤직 On Stage with 고상지

유학생활 동안 ‘보스톤 심포니’의 팀파니 수석을 비롯해 내로라 하는 음악가들 아래서 배운 이씨지만, 그녀는 음악 인생의 참스승으로 피아니스트 정원영 씨를 언급했다. 2012년 한국에 돌아온 그녀에게 국내 음악씬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관련 분야의 지인이 없을 뿐더러 클럽이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조차 알기 어려웠다. 그때 유학 시절 친하게 지냈던 피아니스트 남메아리씨의 소개로 알게 된 정원영 교수가 갇혀 있던 이씨의 음악세계를 확장해 줬다고 한다.

“처음 교수님을 찾아갔는데 5시간이 넘도록 모든 장르의 곡들을 들려주시는 거에요. 제가 너무 음악을 모르고 있다고 절감했죠. 이 분 만나면서 선생님에 대한 개념도 달라졌어요. 전 절대 그런 선생님이 될 수 없을 것 같아요.(웃음) 자신이 아무리 피곤해도 학생들을 위해 시간을 내주시는 분이에요. 제가 가끔은 몸 상하신다고 걱정을 하면 ‘그 사람한테는 이게 너무 중요하다’라고 말씀하시는 정말 멋진 분입니다. 저도 찾아가서 음악 들려달라고 많이 조르곤 했죠. 선생님 덕분에 음악에 대한 많은 것들이 열렸어요. 당시에는 클래식과 재즈만 생각했는데 선생님을 통해 장르를 넘어서 건강한 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 배울 수 있었어요. 그분이 제 음악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분이라고 생각해요.”

“1집은 가장 솔직한 내 모습으로 채워질 것”

클래식을 기반으로 이제 펑크, 스윙, 가요, 재즈 등 장르를 막론하고 음악적 역량을 확장해나가고 있는 이희경은 전제덕, 고상지, 자이언티, 라이너스의 담요, 선우정아, 윤종신 등의 세션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자신만의 색깔을 담은 앨범을 준비 중에 있다고 했다.

“그동안 이것저것 손을 대느라 뭘 하나 깊게 하지는 못한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도 딱 이것만 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어요. 매 순간 지금 제가 가장 관심 있는 분야를 통해서 가장 솔직한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녀의 첫 번째 앨범은 이희경이 최근 시작한 프로젝트 밴드 ‘더 세션’과의 호흡으로 채워질 예정이다. 더 세션은 디제이 겸 프로듀서인 디제이 소울스케이프(DJ Soulscape)를 필두로 비브라포니스트 이희경과 재즈 피아니스트 윤석철, 재즈 펑크 밴드 세컨세션(이태훈, 김문희, 민상용), 퍼커셔니스트 꽌돌로 구성된 콜라보 그룹이다. 자이언티의 콘서트 무대를 꾸리기도 하고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 언더스테이지에서 즉흥공연을 선보이는 등 새롭고도 다채로운 음악을 구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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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경은 최근 더 세션 멤버들과 함께 복합문화예술공간 ‘삼청로 146’를 오픈했다. 이름 그대로 삼청로 146에 위치한 더 세션의 아지트는 지하1층은 케이터링을 서비스하는 라운지로, 지하2층은 각종 공연을 펼치는 뮤지션들의 이색적인 놀이터로 꾸려질 예정이다.

“최선을 다해서 놀자. 제 인생의 모토에요. 놀기 위해 뭐든 열심히 하면 다 잘 된다고 생각해요. 학교에 다닐 때까지 음악은 제게 일이였어요. 하지만 실제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놀기 시작했죠. 사실 이제서야 음악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는데 그게 제일 재미있는 일이 됐어요. 주변에서 일 좀 그만 벌리라고 하는데 여전히 저는 놀 궁리를 하면서 지내요(웃음). 이제 정말 놀 수 있는 장소가 생겼으니 더 재밌게 놀 수 있는 것들을 만들어보려고 해요.”

수익성보다는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개성과 역량을 펼칠 수 있는 특별한 무대를 만들고 싶다는 ‘삼청로 146’의 정식 오프닝 무대는 오는 12월 10일 오후 8시 30분에 열릴 예정이다. 더 세션과 아직 공개되지 않은 스페셜 게스트가 신명나게 놀아볼 예정이란다.

대림미술관에서 펼쳐진 더 세션의 무대

‘마더 바이브(MOTHERVIBES)’, 최근 이희경에게 붙은 별명이자 활동명이다. 공연 중 디제이소울스케이프가 그녀를 “바이브계의 대모”라고 소개하면서 착안한 이름이라고 했다. 실제로 그녀는 5살 난 딸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비브라폰은 사실 누가 쳐도 비슷한 소리가 나요. 사실 제일 뻥을 치기 쉬운 악기에요(웃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한음한음에 진정성이 있어야 하죠. 또 그만큼 하고자 하는 말이 많아야 하는 악기인 것 같아요. 그게 가장 어려우면서도 중요하죠. “

“비브라폰을 하게 되면서 제 인생도 완전히 달라졌어요. 훨씬 재밌고 다양한 음악을 할 수 있게 됐죠. 앞으로도 제약 없이 여러가지 음악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당시에 있는 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그때 그때 성장한 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

이 겨울, 눈 쌓인 삼청로에 울려 퍼질 이희경의 비브라폰과 함께 한바탕 놀아보는 것은 어떨까. 불모지에 가까웠던 비브라폰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은 마더바이브의 가장 솔직한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이희경 페이스북

삼청로 146 바로가기

희진킴

편집장. 음악과 사람, 공연에 대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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