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 돌아온 고전의 '조율사'

<안나 카레니나>로 돌아온 고전의 ‘조율사’

미스터 다이시! <로미오와 줄리엣>의 로미오보다 핸썸하며 TV시리즈 <그레이 아나토미>의 ‘맥드리미(Mcdreamy)’ 닥터 쉐퍼드보다 스윗한, 게다가 <시크릿 가든>의 김주원(현빈)만큼이나 부유한 남자. 너무도 잘난 나머지 오만하고 차가워 보이지만 자기 여자에게만큼은 그렁그렁 애절한 눈빛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남자.

완벽할 따름이다. 덕분에 이 최고의 남자는 1819년 제인 오스틴에 의해 탄생한 이래 2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성들로부터 ‘최고의 신랑감’으로 추앙받으며 꾸준히 사랑받아 왔다. 콧대 높고 당찬 엘리자베스마저 무릎 꿇게 만든 그의 매력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여심을 흔들었기에 미디어는 그간 수많은 다아시들을 창조해냈다.

역대 미스터 다이시

그중 현세기 가장 이상적인 다아시를 꼽으라면 역시 BBC TV 시리즈 <오만과 편견>(1995년작)의 다아시 ‘콜린 퍼스(Colin Firth)가 아닐까? 수려한 외모에 차가운 말투로 곁눈질을 하던 콜린은 원작의 묘사와 가장 가까운 다아시라는 평가를 받는다. 다아시 콜린 퍼스를 모티브로 한 영화(<브리짓존슨의 일기>)가 나올 정도였으니까.

그래서인지 조 라이트 감독의 영화 <오만과 편견>(2005)이 나왔을 당시 다아시 역을 맡은 매튜 맥퍼딘(Matthew Macfadyen)을 두고 말이 많았다. 인지도가 높지도 않을 뿐더러 외모가 뛰어난 것도 아닌데 대체 왜 그를 캐스팅했느냐는 것. 그렇지만 매튜 맥퍼딘은 조 라이트의 각색에 맞는 새로운 다아시를 놀라울 정도로 완벽하게 소화했다. 기존의 다아시보다는 좀 더 감성적인, 투박하게나마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다아시의 ‘인간적 매력’을 한층 끌어올렸다. 이 모든 말들은 그의 ‘눈빛’에서 확인할 수 있으리라.

영화 <오만과 편견> 중, 빗 속에서 다아시에 리지에게 마음을 고백하는 장면

감성적인 다아시의 출현은 “영화 <오만과 편견>이 원작을 훼손하는 작품”이라는 오명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조 라이트만큼 고전이라는 원작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감독이 또 있을까 싶다. 어렸을 때 난독증을 앓았다는 조 라이트 감독은 실제로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덕분에 보다 섬세하고 독자적인 영상 연출이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하나 더, 영화를 완벽에 가깝도록 만든 데에는 영화 음악을 쓴 ‘다리오 마리아넬리(Dario Marianelli)’의 공이 컸다.


“Your hands are cold”

새벽녘 다아시와 엘리자베스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던 그 장면을 떠올려 보라. 푸른 새벽, 늘 가지런하게 옷을 차려 입던 다아시가 옷깃을 채 여미지도 못한 채 들판을 헤치며 걸어오던 모습. ‘완벽하지 않은’ 다아시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던 까닭은 마리아넬리의 음악이 진가를 발휘했기 때문이었다. 수록곡 ‘Your Hands Are Cold”의 힘이다.

“I would have to tell you, you have bewitched my body and soul and I love and love and love you. And never wish to be parted from you from this day on.”

마리아넬리의 음악 속에서 다아시의 고백은 보다 달콤했으며 오스틴의 소설은 아침햇살처럼 빛났다.

<오만과 편견> 장면 보기 http://www.youtube.com/watch?v=5WrgMUXlgMw

영화와 음악의 환상적 결합

다리오 마리아넬리는 이탈리아 출신의 작곡가이자 음악 감독이다. 길드홀 음악 연극학교에서 현대 음악협회 의장과 대학원생 작곡가로 지내기도 했다. <무사><인디스 월드><그림형제-마르바덴 숲의 전설> 등 꽤 많은 작품의 음악작업을 했지만 <오만과 편견>의 사운드트랙에 참여하면서 이름을 알리게 됐다.

영화 음악 작곡가 다리오 마리아넬리(Dario Marianelli)

영화계에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트리오가 있는데 바로 조 라이트 감독과 배우 키이라 나이틀리, 그리고 다리오 마리아넬리의 음악이다. <오만과 편견>에서 호흡을 맞춘 그들은 이후 영화 <어톤먼트>에서 다시 한번 퍼펙트한 조합을 보여준다. 마리아넬리가 <오만과 편견>에서 물 흐르듯 부드럽고 섬세한 피아노 선율로 세기를 뛰어넘는 멜로드라마를 구현했다면, <어톤먼트>에서는 클라리넷, 오보에, 바이올린 등 현악기를 활용해 두 주인공의 비극적 운명과 긴장감 넘치는 서스펙트를 완성했다.

<어톤먼트>에서 특히 인상 깊은 트랙은 모든 사건의 발단이 되는 ‘Briony’. 타이프 소리를 삽입해 어린 소녀가 창출해내는 음모와 불안, 긴장을 극대화했다.

                       

     영화 <어톤먼트> OST ‘Briony’

<오만과 편견>, <제인 에어>, <안나 카레니나> … 고전에 선율의 영혼을 불어넣다

2006년 제 7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오만과 편견>으로 음악상 후보에 올랐던 마리아넬리는 <어톤먼트>를 통해 제 80회 아카데미 시상식, 제65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의 음악상을 수상한다. 촉망받는 음악 감독이다 보니 여기저기서 러브콜도 넘쳐난다. 일찍이 마리아넬리의 음악을 사랑한 조 라이트 감독는 <오만과 편견>, <어톤먼트>, <솔로이스트>를 비롯해 최근 영국에서 개봉한 <안나 카레니나>까지 총 네 편의 영화를 그와 함께 했다.

샬롯 브론테의 소설 <제인 에어>를 재해석한 캐리 후쿠나가 감독 역시 마리아넬리에게 러브콜을 보낸 바 있다. 마리아넬리의 주특기가 ‘고전’인 만큼 <제인 에어>에서는 음악을 통해 캐릭터의 이면과 특성을 잘 살려내 영화음악 작곡가로서의 진면목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마리아넬리가 창조한 바이올린 음악은 비극적 운명 속에서 결렬하게 타오르던 제인 에어 그 자체였다. 특히 이번 음악 작업에는 영국에서 스타 바이올리니스트로 떠오르는 ‘잭 리베크’가 참여해 마리아넬리의 음악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며 극찬을 받기도 했다. 잭 리베크가 연주하는 바이올린의 솔로는 아름답다는 말이 무색하리만큼 처연하게 가슴에 와 박힌다.

      

 바이올리니스트 잭 리베크가 연주하는 <제인 에어> 사운드트랙 ‘Awaken’

<제인 에어>에 이어 마리아넬리는 톨스토이의 고전 <안나 카레니나>를 ‘조율’할 예정이다. 조 라이트 감독, 키이라 나이틀리, 다리오 마리아넬리 환상의 트리오가 다시 뭉쳤다. 게다가 영원한 ‘알피’ 주드로와 영국의 떠오르는 신예 아론 존스까지 함께 한다니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영화는 타임지가 선정한 2012년 ‘올해의 영화’에서 4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영국에서는 이미 9월쯤 개봉을 했다는데 국내에서는 내년에야 만나볼 수 있을 예정이다. 그 사이, 서점에 들러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한 번 읽어보는 것은 어떨지? 마리아넬리의 선율 속에서 재탄생한 21세기 안나 카레리나는 또 어떤 운명 속으로 우리를 끌어당길 것인가.

      

영화 <안나 카레니나>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