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지금은 간판만 가톨릭 신자지만, 열심히 성당을 다니던 시절이 두 번 있었다. 항상 어두운 표정으로 다녀서 ‘자살 예상 1순위’로 꼽혔던 군대 이병~일병 시절, 진로 고민으로 없던 병까지 얻은 대학교 4학년 시절이다. 그렇다고 성당 활동을 열심히 한 건 아니고 주일 미사만 꾸준히 다니는 정도였다.




신부님 말씀이 썩 와 닿거나 하진 않았다. 그보다 내게 위안을 주는건 미사곡(혹은 성가)이었다. 그 중에서도 요새 나오는 현대성가보다 기존 성가가 와 닿았다. 주문진 성당에서 들었던, 논산훈련소 성당보다 세련되진 않았지만 소박하고 진심이 느껴지던 성가를 기다리며 힘든 주중일과를 견뎠다.




전역 후 간간히 찾아들은 미사곡 중 가장 즐겨듣는 곡은 르네상스 시대 시스티나 성당 성가대 지휘자였던 지오반니 피에르루이지의 미사곡이다. 본명보다 출신지로부터 유래한 별명 ‘팔레스트리나’로 유명한 그는 단성음악만을 고집하던 교회 방침을 일거에 뒤집은 걸작 ‘마르첼루스 교황을 위한 미사(Missa Papae Marcelli)’다. 다성과 단선을 절묘하게 배합하면서 경건함과 화려함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이 곡이 인정받으면서, 그는 성직자가 아님에도 성 베드로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어떤 반주도 없이(A Capella) 화음만으로 22일만에 급사한 교황을 추모하는 노래를 다 듣고나면 왠지 멍해지면서 마음에 안정이 온다. 기회가 되면 눈 앞을 정리하고(안대를 추천한다), 헤드셋을 끼고 들어보길 추천한다.




※ 가톨릭 미사곡은 통산 네 곡이 하나로 묶여 있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Kyrie)’, ‘대영광송(Gloria)’, ‘거룩하시도다(Sanctus)’ 그리고 ‘하느님의 어린 양(Agnus Dei)’이다. 팔레스트리나의 위 곡은 ‘사도신경(Credo)’이 추가되어 총 5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