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슬픈 밤이 남기는 '흔적'

비가 슬픈 밤이 남기는 ‘흔적’

새차게 내리는 비 때문에 왠지 기분이 좋아져서 한강을 갔다. 한 손에는 맥주, 한 손에는 MP3플레이어를 들고 서강대교 아래에서 노래를 듣고 있는데, 어느 순간 고개를 들어 옆을 보니 굉장히 화난 얼굴이지만 낮은 목소리로 다투는 연인인 듯한 남녀가 보였다. 잠시 후, 남자가 등을 돌려 내 쪽으로 걸어오더니 그대로 장대비를 맞으며 사라졌다. 고개를 푹 숙인 여자는 잠시 어깨를 들썩이다가 어디론가 사라졌고, 왠지 모르게 어색해진 나는 이 노래를 듣기 위해 유튜브를 뒤적거렸다.

단 하나의 테이크로 이루어진 뮤직비디오. 차 안에 남아 소리없이 우는 여자, 차를 나와 오열하는 남자, 세차게 내리는 비. 진주의 ‘가니’ 뮤직비디오는 신선한 형식과 배우들의 열연 그리고 잔잔히 읊조리는 진주의 보컬이 아우러진 명작 중 하나다.

다만 이런 미디엄템포 R&B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겐 ‘가니’보다 이를 재활용한 임정희의 ‘흔적’이 더 기억에 남는다. 공개된 뮤직비디오는 남자 버전이지만, 김지수의 연기가 일품인(개인적으로 김지수라는 배우를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됐다) 여자 버전에도 잘 어울린다.

그렇게 흔적은, 비가 슬픈 밤이면 생각나는 노래가 됐다. 얼마 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