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하게 그리는 불안과 황홀 사이의 풍경 – Explosions In The Sky 'The Wilderness'

정교하게 그리는 불안과 황홀 사이의 풍경 – Explosions In The Sky ‘The Wilder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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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록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 리스너들에게 ‘포스트락’이라는 장르는 이제 결코 낯선 장르가 아니다. 몇몇 방송이나 광고에 배경음악으로쓰인 시규어 로스(Sigur Ros), 해당 장르의 선구자 격인 모과이(Mogwai), 그리고 국내의 속옷밴드나 노리스펙트포뷰티(No Respect for Beauty)까지 이미 수년간 발전해왔고 나름의 문법을 구축해왔다.

정교하게 계산된 리듬과 리프를 바탕으로 곡을 구성하는 매쓰락(Slint, Tortoise, Labradford 등), 서정성을 기반으로 하여 명확한 기승전결 속에서 사운드를 폭발시키는 방식(캐나다 몬트리올 출신의 Godspeed You Black Emperor – 대곡 지향성과 특유의 형식미로 포스트락 대표 밴드로 손꼽힌다 – 한국,일본, 남미 등 많은 지역의 포스트락 밴드들이 이러한 형식을 취한다), 혹은 전자음악이나 지역음악의 독특한 색깔을 녹여내어서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한국의 잠비나이, 아이슬란드의 Sigur Ros, 그리고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이용한 stereolab이나 mouse on mars 등)

언급한 방식 중 명확한 기승전결과 서정성을 대표하는 밴드 중 하나가 Explosions In The Sky다. 첫 번째 앨범 <Those Who Tell The Truth Shall Die, Those Who Tell The Truth Shall Live Forever>과 두번 째 정규 앨범 <The Earth Is Not A Cold Dead Place>는 각각 죽음과 절망, 동시에 아직 우리가 사는 곳은 따뜻한 곳임을 말한 바 있다. 이후에도 밴드는 이 주제 가운데 그림을 그리듯 앨범을 구성해나갔다. Explosions In The Sky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고요하게 숨죽이듯 연주하다가 절정에서 아름답게 폭발하는 (마치 하늘에서 폭발한다는 밴드의 이름처럼) 극적인 구성이다. 그 덕분에 포스트락이라는 장르에 입문할 때 Explosions In The Sky라는 팀을 통해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포스트락이라는 장르가 1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해오면서 침묵-상승-폭발로 이어지는 구성에 매너리즘을 느끼는 청자들이 많아진 듯하다. 처음에는 조금 고요할 것이고 기타 사운드가 고조되며 드럼의 스네어와 탐이 보조를 맞추고 폭발, 다시 숨을 죽이며 마무리. 마치 공식과도 같은 구성이다.

이를 탈피하기 위해 곡의 구성에 관한 고민을 하는 경우도 있고 올해 초 새앨범을 낸 Tortoise나 Explosions In The Sky, Mogwai 처럼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밴드의 전면에 내세우면서 변화를 모색하기도 한다. Explosions In The Sky 의 새 앨범 <The Wilderness>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면 역시 곡들의 면면에 침투한 일렉트로닉적인 요소들이다. 다른 팀들의 음악과 차이가 있다면 Explosions In The Sky가 기존에 곡을 만들던 방식은 유지한 채 전자적인 사운드를 유기적으로 결합했다는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Losing The Light”라는 곡에서 초반부에 등장하는 저역대의 전자음이다. 빛의 상실이라는 주제를 표현하는 이 곡에서는 다른 주변 악기 없이 주기적으로 언급한 전자음이 등장하며 어떤 신호를 주는 듯한 풍경을 만든다. 뒤이어 리버브와 피드백이 걸린 소리가 울려퍼지고 킥 드럼을 연주하며 곡을 고조시킨다. 이러한 일련의 구성들을 보면 단순히 밴드의 구성에 전자 연주가 추가된 것이 아니고, 치밀한 구조 아래 기존에 사용하지 않았던 새로운 요소가 목적에 맞게 조립된 느낌이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점은 새로운 시도 안에서 그들이 가진 장점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소리로 청자들 앞에 섬세하게 구조화 된 풍경을 그릴 수 있는 그들만의 출중한 능력이 이번 앨범에서도 뚜렷하게 유지되었다. 예컨대, 앨범에서 가장 짧은 곡인 “Infinite Orbit” (2분 38초)에서도 특유의 형식미를 잃지 않고 리듬과 리프가 반복/변주되며 궤도를 곡으로 형상화했다. “Disintegration Anxiety”에서는 기타와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엉켜 휘몰아치며 격정을 표현했다. “Color In Space”라는 곡에서는 후반부에서 흑색 우주를 프리즘에 비추었을 때 수많은 색깔이 튀어 나오는 것처럼 황홀한 기타 노이즈가 꽉 차게 퍼진다. 앨범의 마지막곡 “Landing Cliffs” 에서는 밴드를 구성하는 악기들이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내딛으며 아름답고 황홀한 불안감을 가져다준다.

Explosions In The Sky의 새 앨범 <The Wilderness>는 포스트락 밴드들이 고민하고 있는 방향에 대해 좋은 변화의 예시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그릴 것인가에 대한 설계 위에, 새로운 요소를 이용하거나 기존의 요소를 분해 재구성하여 배치 하는 것을 통해 이처럼 인상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