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이 살아남는 법 – 그리고 러블리즈의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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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간 걸그룹의 세대교체라고 할만큼 많은 걸그룹들이 나타나고 사라졌으며, 가요계의 판도에 인상적인 영향을 주기도 했다. 남성 아이돌 같은 경우는 음반 판매 수익이나 해외에서 거둬들이는 수익만으로도 충분히 ‘비즈니스’적 존재감을 세울 수 있기 때문에 대중성에 크게 초점을 맞추진 않았고, 그 자리를 ‘걸그룹’이라고 불리우는 여성 아이돌들이 많이 채웠던 것이다. 그러면서 이전처럼 단순히 섹시하거나 청순함만으로는 대중들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어려워졌고, 여러가지 특성이 결합된 이미지나 음악적으로 특이점을 남긴다거나 하는 방법으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게 여러 여성 아이돌들이 보여준 모습 중 대중적으로나 작품적인 측면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몇몇의 걸그룹들이 있다.

소녀들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법 – 여자친구, 트와이스, 러블리즈

지금 시점에서 인상적인 결과물이나 성적을 남기고 있는 걸그룹을 생각해본다면 여자친구, 트와이스, 그리고 지금 앨범을 들여다보려 하는 러블리즈다. 전혀 다른 색깔을 보이면서 조금씩 교집합도 내비치는 이들의 데뷔부터 현재까지 음악, 컨셉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일단 차트 역주행과 롱런, 칼군무, 중소 기획사의 승리 등으로 여러가지 화제를 몰고온 여자친구다. 이들을 얘기하면서 ‘유리구슬’, ‘오늘부터 우리는’, ‘시간을 달려서’ 로 이어지는 작곡팀 이기용배의 음악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상승 가도를 달리며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온 이 곡들이 정교하고 훌륭한 퀄리티를 가지고 있냐고 묻는다면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못하는 사람이 여럿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투박한 사운드 (악기의 사용과 그것들 사이의 밸런스), 전형적인 구성 (뚜렷한 기승전결과 고음이 폭발하는 후반부, 익숙한 멜로디 위에 얹어지는 드라이브 걸린 기타솔로 등) 등 아쉬운 점이 몇가지 있다. 곡과 가사를 관통하는 정서 – ‘쉽게 깨지지 않는 유리구슬’ 처럼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고, ‘용기내서 고백’하기도 하며 (똑같은 짝사랑도 그들이 노래하면 성공할 것만 같다) ‘어른이 될 수만 있다면 거친 세상 속’에서 손까지 잡아주는 소녀들이다 – 는 에너지 넘치고 씩씩한 여학생의 전형이다. 그러한 요소들은 걸그룹을 좋아할 수 있는 특정 대상들에게는 본인들이 가지지 못한 것이기에 원하는 성질, 곧 가장 관심을 끌기 좋은 것들이다.

음악이 주는 전반적인 느낌도 90년대나 2000년초 SM을 비롯한 대형기획사가 보여주었던 아이돌 음악의 레퍼런스에서 기름진 것과 어려운 것을 덜어낸 진입장벽이 낮은 초급 버전 같다. 기존에 걸그룹 음악을 주로 소비하지 않던 대중들에게까지도 어렵지 않게 관심과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던 것이 바로 그런 이유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중 에너지와 활기의 요소라면 최근 ‘Cheer Up’을 발표하고 데뷔이후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트와이스도 공유하고 있다. 여자친구의 음악과 무대에서 느껴지는 활기와 에너지에는 소녀스러움과 아련함이 깔려있다면, 트와이스는 조금 다르다. ‘네가 무엇을 좋아할지 모르니 이것 저것 다 준비해봤어’라는 우스갯 소리처럼 트와이스 안에는 각기 다른 밝은 매력을 가진 보석들이 있으니 조금만 더 힘내서 노력해보라는 느낌을 준다. 섹시함과 청순함 어느쪽에도 속하지 않은 제3의 이미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스포티한 느낌의 소녀들 같아서 조금만 노력하면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것이다. (친근함과 익숙함의 이미지는 그동안 JYP가 가장 잘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던 요소 중 하나였다. 엠넷에서 ‘식스틴’이라는 리얼리티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서 트와이스를 런칭한 것도 그러한 점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방법 중 하나인 것으로 보인다)

‘우아하게’와 ‘Cheer Up’을 보면 내가 무엇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이렇게 충분히 아름다우니 너에게 에너지를 주어서 가깝게 하고 더 좋은 사람이 되게 하겠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이기용배와 달리 ‘우아하게’와 ‘Cheer Up’를 만든 블랙아이드필승은 최대한 미니멀하게 곡의 구성을 가져가면서 쉬운 훅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여자친구와 트와이스 둘 다 인상적인 훅을 가진 음악을 내놓았지만 거기까지 가는 방법이 다른 것이다.

혹자는 의문을 가지기도 할 것이다. 여자친구나 트와이스에 비해서 대중적 인지도나 성적이 낮은 러블리즈를 굳이 그들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가장 큰 이유는 주목할만한 앨범의 완성도와 팬덤의 성장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그러한 성과를 분석하면서 느끼는 앞선 그룹들과 상반된 요소들 때문이다. 윤상, 다빈크, 스페이스 카우보이로 이루어진 작곡팀 원피스의 곡이 그들 앨범의 타이틀곡으로 (지난해 말에 나온 싱글 <Lovelinus>를 제외하고) 선정되어 왔다. ‘Candy Jelly Love’, ‘안녕’ , ‘Ah Choo’ (이렇게 세 곡을 소녀 3부작이라고 부르는 듯하다) 세 곡의 타이틀 곡으로 활동했는데, 공교롭게도 세 곡 모두 짝사랑에 관한 곡이다. 겉모습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들인데, 겁먹거나 몰래 바라보거나 때로는 마음을 전하지조차 못한다. 그러한 느낌을 주는 것은 윤상이 주축인 원피스의 곡이 주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템포가 느리지 않은 메이저 조성의 곡임에도 중간 중간 마이너의 느낌을 주는 멜로디의 변주와 윤상 특유의 편곡이 풋풋함 뒤에 아련함 혹은 쓸쓸함을 만들어낸다.

앨범을 들여다보면 <Hi~> 앨범의 ‘어제처럼 굿나잇’ , ’놀이공원’, ‘이별 Chapter 1’ 은 처음부터 마이너로 발라드와 댄스곡을 과감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곡의 구성에서 인상적인 것 중 하나는 흔히 말하는 터지는 부분, 고음이 폭발하거나 곡이 고조되는 부분이 없다 (‘안녕’의 브릿지에서는 조금 그런 요소가 있긴 하다). 코드 진행이나 악기 구성의 변화를 통해서 곡을 고조시키고 마무리하거나 아예 1절과 2절 verse와 후렴만 반복하고 끝나기도 한다. 어찌보면 현재 활동하고 있는 걸그룹 중 가장 소극적이고 여려보이는 컨셉과  전형성에서 벗어난 원피스의 작법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조금씩 인지도를 높였고, 차기작의 방향성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다.

(조금 덧붙이자면 이러한 스타일은 울림 엔터테인먼트의 이중엽 대표의 성향에서도 비롯되었다고 본다. 90년대 이승환,장필순,유희열 등의 매니저를 한 경험과 김동률, 에픽하이, 넬등의 뮤지션들이 소속되었던 기획사의 이력, 그리고 남성 아이돌 인피니트를 기획하면서 보였던 모습들이 그 근거가 될 것이다. 또한 인터뷰를 통해서 음원 차트 같은 것은 관심 없고 음악적 완성도와 고정적으로 소비해 줄 팬덤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성향을 더 확실히 파악할 수 있다. – idology 인터뷰 참조)

http://idology.kr/4521

http://idology.kr/4584

틈새를 공략하거나 모험수를 두거나 – 러블리즈의 새로운 시작

이제 지난 4월 25일 발매된 러블리즈의 새 앨범 <New Trilogy>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처음 앨범 타이틀만 공개되었을 때, 이번에는 뭘 할려고 하는거지라는 생각에 기대반 우려반이었다. 그리고 공개된 티저를 보고 생각이 굳어졌다. ‘윤상과 울림은 하고 싶은 음악과 만들고 싶은 앨범에 모든 초점을 다 맞추었구나’라는 것이다.

공개된 타이틀곡 ‘Destiny  (나의 지구)’마저 감상평이 매우 갈리게 되었다. 윤상의 색깔이 많이 느껴져서 좋다, 화창한 봄에 너무 어두운 것 아니냐, 90년대 노래를 연상하게 한다.. 등등의 평가가 있었다. 곡을 듣고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이렇게 강렬한 마이너 조성을 가진 곡을 발표했다는 것이다. 이전에 발매된 여자친구의 ‘시간을 달려서’ 역시 마이너 조성을 가진 곡이지만 기승전결이 뚜렷한 구성과 심플한 코드 진행으로 메이저 조성에서 느낄 수 있는 정서들을 어느 정도 유지했다. 하지만 ‘Destiny  (나의 지구)’는 마이너 조성을 가진 데다가 도입부와 후렴의 조성이 다를 정도로 코드 진행이 복잡하고, 현악과 베이스라인이 몰아치면서 단조가 줄 수 있는 정서를 오히려 극대화 시킨다. 그리고 가사 내용은 누군가를 짝사랑 하는 사람을 짝사랑하는 달과 지구와 태양이 이야기이다. 진입장벽을 낮추고 쉽게 함께할 수 있게 만들려고 하는 다른 걸그룹들과 정 반대의 방법을 택한 것이다.

인트로 트랙인 ‘Moonrise’와 이어져서 바로 후렴부터 몰아치기 시작하고, 후반부에서는 곡에 여러가지 요소들이 더해지면서 고조되는 것이 아니라 인트로에서 들리던 ‘Moonrise’가 뒤에 깔리면서 톤을 다운시키며 듣는 사람의 귀를 이끈다. (지구를 도는 달에 짝사랑을 비유한 것인데, 곡 구성 역시 인트로가 다음곡 맨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순환구조이다. 재미있는 요소 중 하나이다) 90년대 음악이 연상된다기보다는 더 자세하게 말하면 90년대에 윤상이 다른 가수들에게 주었던 곡들이 연상되었다. 강수지에게 주었던 ‘필요한건 시간일뿐’이라는 곡이나 J에게 주었던 ‘Time Out’이 생각났는데, 전자는 후렴이 곡의 시작부터 치고 나오는 윤상표 마이너 댄스곡이기 때문이었고, 후자는 하우스 리듬에 현악이 몰아치듯 입혀진 구성 때문이다.

러블리즈의 컴백 쇼케이스에서 작곡팀 원피스를 이끄는 윤상은 “짝사랑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한 러블리즈가 음악을 만드는 데 있어서 훌륭한 ‘오브젝트’라고 표현한 바 있다. 사실 그러한 사실을 인식하고 있고 ‘Destiny (나의 지구)’만 들었을 때에는 러블리즈라는 그룹에 지나치게 윤상의 색깔이 입혀지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수가 감당할 수 있는 영역 내에서 프로듀싱을 해야한다는 것은 여러가지 예를 통해서 많이 보여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앨범의 수록곡을 끝까지 듣게 되면 그러한 걱정은 조금 덜 수 있다. 인트로를 포함해서 원피스의 곡이 4곡으로 절반 이상이지만, 다른 작곡가의 곡들도 지나치게 무거워지지 않게 훌륭하게 앨범을 뒷받침하고 있다. 원피스가 만든 발라드 트랙은 이전에 발표되었던 ‘어제처럼 굿나잇’ ,’Circle’의 연장선상 같기도 하고 다른 작곡가의 작품으로 실렸던 ‘작별하나’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사용된 악기나 곡의 구성, 멜로디 등에서 유사한 부분을 꽤 발견할 수 있다.

역시 원피스가 준 곡 ‘마음’은 이전에 발표했던 러블리즈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반갑게 들을 수 있는 곡이다. 이 곡에서는 ‘너를 바라봤었어/ 담벼락 저너머로 /까치발을 들고서’ 로 시작하는 2절 뒤 브릿지 파트가 인상적인데, 윤상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알 수 있는 그 특유의 멜로디가 곡 전체의 흐름에서 도드라지게 배치되면서 쓸쓸함과 안타까움의 정서를 곡에 더해준다.

이전 앨범에서 준수한 수록곡 ‘Hug Me’를 만들었던 제이윤이 이번에 ‘퐁당’이라는 곡을 주었고, 앨범에서 가장 밝은 곡인 ‘1cm’가 게임기 소리를 연상시키는 미디 사운드로 귀를 사로잡으며 앨범의 분위기를 살려준다 (이 두곡이 앨범에서 가장 밝은 곡이지만, 전하는 내용은 매우 조심스럽다. 내 앞에 다가와서 이야기 해주고 다치지 않게 ‘1cm’씩 아주 조금씩만 다가오라고 한다). 이 앨범의 마지막에 실려 있는 곡인 ‘인형’은 앨범에서 가장 독특하고 인상적인 느낌을 준다. 티저와 앨범 프리뷰가 공개 되었을 때부터 호기심을 자극하였는데, 우선 기존 걸그룹의 곡에서 거의 쓰이지 않은 왈츠 리듬으로 만들어진 곡이고 관악기인 플룻이 간주의 중심이 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렇다 할 후렴없이 두개의 테마와 간주로만 완성된 곡은 서늘한 느낌을 주기까지 하였다. 이 곡이 그러한 정서를 환기시키는 까닭은 가사에서 연유되는 점도 있다.

난 말 없는 인형 / 조용히 그대를 기다려 / 방 한 켠의 인형 / 가만히 그대를 기다려 , 알아요 나를 닮은 그 애를 / 알아요 그 앨 닮은 내 모습 / TV 속에 춤추는 그 앨 / 난 멈춰 선 채 바라만 보죠

마치 TV속에서 움직이고 비치는 아이돌과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현실과 컨셉의 묘한 경계에 있는듯한 느낌을 주면서 청자의 기분을 더욱 묘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이돌이 대중의 관심을 받고 소비될 수 있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쉽게 접근하고 기억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번 러블리즈의 <New Trilogy>앨범은 실험이기도 하고 새로운 시도의 전조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기존 앨범에서 보이던 전형성에서 어긋난 작법을 확대했고, ‘Destiny’를 대표로 볼 수 있듯이 그들만의 세계와 판타지를 더욱 견고히 하면서 울타리를 조금 더 높인 것이다. 새로운 3부작이라면 앞으로 적어도 두 앨범 정도는 이러한 노선을 견지한다는 것인데, 앞으로 또 어떠한 수를 둘 지 관심을 두고 지켜보게 만드는 흥미로운 아이돌 앨범을 만난 것 같아서 인상적이다.

윤주환

소리와 영상을 사랑하는, 말보다 글이 더 익숙한, 작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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