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FESTIVAL’ @테이크아웃드로잉: 축제와 현실이 동시에 마주쳤던 순간

 

테이크아웃드로잉 ©Jongkyu Kim

51플러스를 했던 테이크아웃드로잉 ©Jongkyu Kim

한남동 카페 테이크아웃드로잉에 대해서는 할 말이 참 많지만 무엇부터 말해야할지 모르겠다. 우선 나는 그전까지 한남동 근처에도 안 가본 사람이라는 것을 못 박아 둔다.

작년부터 SNS상에서는 한 사건 때문에 큰 논란이 있었다. 바로 테이크아웃드로잉이란 복합문화공간에 ‘월드클래스’ 가수 싸이와의 건물 계약 문제가 얽히게 된 배경이었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가수 싸이가 하필이면 고집 쎈 예술가 임차인을 만나는 바람에 빌보드 2위 이상의 일을 못하고 있다며 눈물 흘리는 싸이의 사진을 박은 기사를 썼고, 그를 옹호하는 누리꾼들은 테이크아웃드로잉을 향해 대량의 비난의 화살을 쏘았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은 기사의 내용에 반박하면서 불특정 다수에게 사실 그대로를 고통스럽게 설명해야 했으며, 그 와중에 수차례의 강제집행을 막아내야 했다. 그런 혼돈과도 같은 상황이 인터넷을 통해 거의 생중계되다시피 되고 있었다.

얼마 뒤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임대차 관련법의 문제점을 깨닫고 테이크아웃드로잉과 연대하기 시작했다. 과거 칼국수집 두리반 때처럼 음악가들이 테이크아웃드로잉에 들락날락거렸다. 여러 문화예술 공연이 한꺼번에 펼쳐졌던 축제 ‘대망명’을 비롯해 다양한 공연들이 연이어 열렸다. 문화예술팬 입장에서 보면 하나같이 ‘꽤 괜찮은’ 공연들이었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서 ‘테이크아웃드로잉 컴필레이션’이란 앨범이 세상에 나오게 된다. 이에 관한 배경을 전혀 모르고 들어도 새롭고 신선한 음악가들이 참여한 좋은 앨범이었다.

나는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너무 궁금했다. 결국 ‘레코드폐허’ 행사 때 처음으로 테이크아웃드로잉을 가긴 했다. 그러나 오래 있지는 못했는데 비겁한 핑계를 대자면, 공연은 엄청나게 시끄러웠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렸고 다른 일행들까지 함께 있어서 너무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테이크아웃드로잉의 모습이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왜 나는 자꾸 테이크아웃드로잉이 신경이 쓰이는 걸까?’ 관련 소식들을 SNS에서 찾아보며 드는 의문이었다.

그러던 중 지난 5월 1일에 ‘제 6회 전국자립음악가대회 51+ FESTIVAL'(이하 ’51플러스’)가 열린다고 소식을 들었다. 개인적으로 과거 두리반을 지키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영화 <파티51>을 감명깊게 봤다. 어쩌면 그때와 비슷한 상황과 분위기를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51플러스에, 다시 한번 테이크아웃드로잉에 가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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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예술인들의 생생한 현장들

2016년 5월 1일은 더웠다. 오후 1시부터 시작된 51플러스에는 김목인, 단편선과 선원들, 실리카겔, 야마가타 트윅스터, 위댄스, 쾅프로그램, 키라라, 플래시 플러드 달링스, 헬리비젼 등 40여 팀이 참여했다. 51플러스답게 새로운 이름들도 눈길을 끌었다.

무대는 테이크아웃드로잉의 내부 공간 4곳에서 진행되었다. 1층 야외와 1층 내부, 2층, 옥상에서 동시에 열렸다. 편안하고 쾌적한 분위기에서 피크닉 같은 페스티벌을 즐기기보다는 여러 무대를 분주하게 오가면서 아티스트들이 펼치는 치열함과 생생함을 엿볼 수 있었던 현장이었다. 아티스트들은 다시 없을 그 순간에 공연을 펼치는 것이 기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한 듯 보였다.

공연진행은 본인 스스로를 음악생산자들로 지칭하는 음악가들과 리스너, 관련 종사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협동조합 ‘자립음악생산조합’이 담당했다. 이들은 51플러스 동안 직접 공연을 하기도 하고 진행을 맡기도 하면서 때론 음향까지도 신경쓰는, 그런 모든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좀 전까지 공연하던 아티스트가 바로 내 옆에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다거나 화장실에서 딱 마주치기도 하는 그런 재미난 상황들도 있었다.

나는 51플러스를 관람하는 동안 이 매력적인 현장의 장면을 하나하나 사진에 담아 수시로 SNS에 업로드했다. 몹시도 아쉬운 점은 작성자의 휴대폰 카메라 상태가 좋지 못해 사진 화질이 굉장히 안 좋다는 것이다. 이 글에 실은 사진은 모두 그때 찍은 것임을 밝힌다. 당시의 모습을 미처 선명한 사진으로 보여줄 수 없음에 양해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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됸쥬 ©Jongkyu Kim

먼저 옥상에 올라 갔더니 싱어송라이터 됸쥬(DyoN Joo)가 공연하던 참이었다. 다른 여성 싱어송라이터와 다르게 됸쥬의 음악은 하이톤의 고음과 지극히 본인의 입장에서 쓴 가사가 귀에 꽂혔다. 90-2000년 시절의 여성 가수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홀로 기타를 든 채 노래하는 그녀와 옥상 뒤로 보이는 서울의 낮 풍경이 무슨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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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카겔 ©Jongkyu Kim

2층에서는 최근 홍대 씬에서 주목 받고 있는 밴드 실리카겔이 무대에 올랐다. 실리카겔의 라이브는 거의 1년만에 보는 건데 전보다 훨씬 슈게이징에 가까워진 형태였으며 서정적이면서도 사이키델릭함이 담겨 있었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의 음향이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음에도 사운드가 공간을 가득 채웠고 속사포처럼 몰아치는 연주의 합이 절묘했다. 관객들은 무아지경으로 실리카겔의 음악을 향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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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Jongkyu Kim

실리카겔의 공연이 끝나고 더워서 야외로 나갔다. 부부 뮤지션 .59(쩜오구)가 공연을 펼치고 있었다. 일행과 함께 잠시 쉬면서 그들의 음악을 들었다. 이 시간부터 테이크아웃드로잉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늘었다. 지나가던 시민들도 그 앞에서 멈추거나 서성였다. .59의 음악은 그런 일상의 좋은 배경음악이 되어 주었다. 일행 중 한 명은 두 사람이 함께 음악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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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운드 제로 ©Jongkyu Kim

다시 2층으로 올라갔다. 어라운드 제로라는 2인조 펑크 밴드가 연주하고 있었다. 첫 모습부터 범상치 않았는데 소위 말하는 ‘포스’가 엄청났다. 거친 샤우팅과 반복적인 가사, 그리고 유난히 튀는 소품들… 정체를 알 수 없는 플라스틱 마네킹과 무슨 SM 영화에 나올 법한 소품들을 늘어 놓은 채로 공연이 진행되고 있었다. 갑자기 마지막 곡을 끝낸 기타리스트가 ‘행위 예술’이라고 밖에 부를 수 없는 기행을 펼쳤다. 사람들은 그 모습에 눈을 떼지 못했고 어떤 이는 탄식을 내뱉었다. 일행 중 하나는 식은 땀을 흘렸다. 어라운드 제로는 ‘젠트리피티케이션’에 의해 상처 받는 사람들을 표현한다는 의미로 마지막 퍼포먼스를 펼쳤다고 한다. 이날 봤던 모든 공연 중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관심이 있으면 당시를 기록한 영상들을 인터넷 검색으로 찾을 수 있으니 꼭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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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선과 선원들 ©Jongkyu Kim

단편선과 선원들은 이날 봤던 모든 무대 중에 관객과 뮤지션 모두가 즐겼던 무대였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의 모든 관객들이 이들을 보기 위해서 진작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최근 2집을 내고 정력적인 활동을 선보이고 있는 단편선과 선원들의 인기를 몸소 실감할 수 있었다. 그들은 여느 때처럼 역동적인 연주를 들려주었고 관객들은 밴드에 환호했다. 과거 두리반 때 주역이었던 보컬 단편선은 지난 51플러스를 거치면서 가장 많은 변화를 겪은 뮤지션 중에 하나다. 아무래도 감흥이 남달랐던지 그는 간단하게 자신의 소회를 털어 놓았다. 관객들은 단편선과 선원들의 거의 대부분의 곡을 떼창했고 크게 함성을 질렀다. 특히 ‘동행’을 부를 때의 떼창에서는 단편선 본인도 흡족한지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가히 단독공연을 방불케 했다. 며칠 전 단편선과 선원들의 2집 쇼케이스를 갔던 일행 중 몇몇은 이날의 공연이 훨씬 더 좋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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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nchusevenmx ©Jongkyu Kim

야외에서는 16살의 전자음악 뮤지션인 Bornchusevenmx가 실험적인 음악을 선보이고 있었다. 야외보다는 실내에 훨씬 잘 어울리는 음악임에도 심혈을 기울여 연주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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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칭 포 소울드러머 ©Jongkyu Kim

온몸을 붉게 칠한 채 열정적인 연주를 들려준 써칭 포 소울드러머는 과거 시절의 펑크 밴드를 보는 듯 했다. 그들은 본인들의 공연이 끝난 뒤에도 장난을 치듯이 다른 팀의 공연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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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스토리 ©Jongkyu Kim

여성 듀오인 투스토리도 인상적이었다. 재미난 가사와 화음, 쉬운 멜로디가 누구라도 좋아할 법한 음악이었다. 옥상에 모인 관객들은 그들의 따스한 노래를 들으며 미소를 지었다. 아무나 그런 분위기를 만들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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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라라 ©Jongkyu Kim

야외에서 공연한 전자 음악가 키라라는 이날 이후 프랑스에서 선보일 공연 셋을 그대로 준비했다고 했다. 공연이 망하면 프랑스에서도 망할 것 같다고 농담과 진담이 반반 섞인 멘트를 하면서 공연을 시작했다. 키라라는 야외 대낮 길가에 선 사람들을 모두 정신없게 춤추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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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프로그램 ©Jongkyu Kim

구 두리반 시절에도 활동했던 쾅프로그램의 공연은 서서 보기 힘들 정도로 관객이 가득 메웠다. 제대로 그들의 모습을 보려면 차라리 뒤로 물러서서 까치발로 봐야할 정도였다. 멤버 최태현의 영향인지 쾅프로그램은 이전에 비해 노이즈를 잔뜩 먹은 사운드를 들려 주었다. 과거와 달라진 모습으로 훨씬 먼 지점을 향해 달려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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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목인 ©Jongkyu Kim

싱어송라이터 김목인이 노래할 때는 옥상 공연 중 사람들이 제일 많았다. 현장 안내원은 너무 많은 사람들 때문에 지붕이 무너질 것을 우려해 입장을 제한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김목인은 여느 때처럼 뼈 있는 가사 속에 잔잔한 울림을 담은 곡을 연주했다. 옥상에 가득 모인 사람들은 김목인이 노래하자 모두 숨을 죽인 채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마치 시간이 정지한 광경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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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 ©Jongkyu Kim

일렉트로니카 듀오 투명(twomyung)이 공연할 때는 막 저녁 시간이 되어 갈 때 쯤이었다. 그때 테이크아웃드로잉 1층 야외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녔고 공연을 마친 몇몇 뮤지션들은 길 바닥에 주저 앉아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투명의 음악은 그런 비일상적인 상황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노이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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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푸하 ©Jongkyu Kim

최근 이름을 조금씩 알리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황푸하의 옥상 공연도 선명하게 기억이 남는다. 어지럽고 정리정돈이 안 된 분위기 속에서도 꼿꼿이 앉아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거목처럼 단단해 보였다. 무대를 꽉 채우는 목소리의 울림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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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가타 트윅스터 ©Jongkyu Kim

야외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것은 뮤지션 야마가타 트윅스터, 그러니까 민중 엔터테이너로 유명한 한받이었다. 그 역시도 과거 두리반 시절을 몸소 겪은 산증인이어서 그런지 이날 한판 제대로 벌리려는 것 같았다. 그는 천천히 관객들과 어울렸고 펄쩍펄쩍 뛰고 함께 춤을 췄다. 공연 중간에 야마가타 트윅스터는 잠시 정차한 마을버스에 뛰어들어 앞문으로 들어갔다가 바로 뒷문으로 나오는 기행을 선보이며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느닷없는 축제의 끝, 현실이 찾아왔던 순간

한편 낮부터 소음으로 인한 민원 신고를 받았다는 경찰들이 테이크아웃드로잉을 찾아 왔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오래 있지 않고 돌아서길래 별일은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공연 때 이날의 하이라이트격인 사건이 터지게 된다. 때마침 경찰이 세 번째 방문을 했을 때 야마가타 트윅스터는 ‘관 따로 매라’를 부르고 있었다. 이 노래는 테이크아웃드로잉 컴필레이션에 실린 곡으로 건물주인 가수 싸이를 비판하는 가사를 담았다. 경찰들은 소음과 소란을 조장한다며 야마가타 트윅스터에게 신분증 제시를 요청했다. 한창 공연 중인 야마가타 트윅스터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경찰들은 그 자리에서 바로 야마가타 트윅스터를 현행범으로 체포하고 경찰차로 끌고 갔다. 그 모든 과정이 5분도 채 안된 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관객들과 뮤지션들은 경찰들을 막아서며 경찰의 부당한 행동에 반박했다. “먼저 운영진과 대화해야 하는 게 아니냐”, “그렇게 말도 안되는 이유로 잡아가서야 되겠느냐”, “너무 심하다”, “분명히 설명했고 근거를 말했다”, “모르면 말을 하지 말라”, “촬영하지 말라”. 그런 말과 말들이 끊임 없이 이어졌다. 경찰차와 형사들이 하나둘 늘어났고 지나가던 행인과 자동차들은 이 광경을 궁금해 하며 멈춰섰다. 그런 상황이 1시간 넘도록 이어지자 갑자기 한 경찰관은 “이렇게 각자 하고 싶은 말만 떠들지 말고 한 사람이 대표해서 얘기해보라”고 했다. 그러자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얼음이 된 것처럼 멈췄다. 공권력이라는 것의 실체와 그저 자기 몸 하나 걱정하기 바쁜 시민 중 하나일 뿐이라는 자각, 무력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결국 야마가타 트윅스터를 태운 경찰차가 자리를 떴다. 아까까지 굳게 뭉쳐 있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홍대라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공연용 리어카인 구루부 구루마가 홀로 남은 광경이 괜히 애처로워 보였다. 더이상 공연을 보고 싶지 않았다. 갑자기 피로와 허탈감이 밀려 들면서 허기졌다. 일행 몇몇은 공연을 더 보겠다고 해서 나와 나머지는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테이크아웃드로잉을 떠났다.

밥을 먹고 있는데 테이크아웃드로잉에 남아 있던 일행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야마가타 트윅스터가 별탈 없이 풀려났다고 했다. 마침 SNS에서도 그 소식이 전해지고 있었다. 야마가타 트윅스터는 곡 내용이 제목 그대로인 ‘돈만 아는 저질’을 부르며 구루부 구루마를 끌고 한남동 거리를 행진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천만 다행이라며 안도하는 댓글들이 이어졌다. 51플러스의 마지막은 지각해서 제 시간에 공연을 치르지 못한 싱어송라이터 도마가 장식했다고 한다. 마지막까지 51플러스, 테이크아웃드로잉다웠다. 그날의 긴 하루는 그렇게 끝이 났다.

풀려난 야마가타 트윅스터는 테이크아웃드로잉 앞에서 몇곡을 불렀다고 한다. (출처: 달여리 작가)

51플러스를 열기 바로 전 테이크아웃드로잉은 가수 싸이와의 분쟁에서 최종적으로 합의했다. 싸이는 8월말 이후에 테이크아웃드로잉 자리에 새로 건물을 지을 것이라고 했다. 그날 그곳에서는 그렇게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러나 한달이 된 지금까지 아무리 인터넷 검색엔진을 뒤져봐도 올해 51플러스에 대한 외부기사가 하나도 없다. 신기한 일이다. 언론에서는 테이크아웃드로잉과 싸이와의 합의로 모든 게 다 잘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일을 먼저 키운 것은 언론이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일까?

여느 카페와는 다르게 예술가들이 작업하고 전시했던 공간, 젠트리피케이션의 상징적 공간이 되어버린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앞으로 영영 사라진다. 예술가들은 그나마 예술가의 편이 되어주던 공간 하나를 또 잃어버리게 된다. 물론 서울 어디선가에 다른 테이크아웃드로잉은 또 생겨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가 시간을 보내고 기억에 남아 있는 공간들이 이렇게도 쉽게 허물어지고 지워진다. 51플러스는 그런 아쉬움과 처절함을 노래하고 기억해달라고 외친 장례식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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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플러스가 열렸던 그날 오후의 테이크아웃드로잉 ©Jongkyu Kim

이 이후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신사동 가로수길에는 건물임대인인 가수 리쌍으로부터 명도소송 당한 곱창집 우장창창을 지키기 위해 주변 상인들과 단체들이 항의를 하고 있고, 무악동에는 롯데건설로부터 서대문형무소와 옥바라지 골목을 지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과 음악가들이 힘을 모으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인디 음악 덕분에 상권을 크게 부흥시킨 홍대 앞은 지금 높은 임대료 때문에 클럽과 음악가들이 떠나고 있는 중이다.

합정동, 상수동, 연남동, 망원동, 서촌, 경리단길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거리들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이렇게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현실 속에서 무엇을 해야하는 것일까? 그날 야마가타 트윅스터가 손도 못 쓰고 끌려간 것처럼 현실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아직도 나는 테이크아웃드로잉에 대해서 무슨 말부터 해야할지 모르겠다. 다만 그날의 광경만은 생생하게 기억한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그래도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 늦게나마 그날의 일을 기록해본다.

김종규

음악과 글쓰기를 실천하고자 합니다. 앨범리뷰와 인터뷰 등을 씁니다. radio7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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