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상지, 윤종수] 전통과 열정을 뛰어 넘어

반도네온 연주자 겸 작곡가 고상지와 바이올린 연주자 윤종수 ©jongkyukim
반도네온 연주자 겸 작곡가 고상지와 바이올린 연주자 윤종수 ©jongkyukim

국내 유명 반도네온 연주자 겸 작곡가 고상지가 두 번째 앨범 [Ataque del Tango]를 들고 돌아왔다. 탱고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인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iazzolla)와 카를로스 가르델(Carlos Gardel)의 곡들을 담은 그녀의 새 앨범을 듣고 있으면 ‘탱고의 어택’이란 앨범 제목처럼 아르헨티나 탱고가 가진 감성과 매력이 충격처럼 다가온다. 게다가 선구자의 음악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담으려는 후배들의 기쁨과 희열, 거기에 전통과 열정 사이를 넘나드는 연주자들의 숨결까지 어느 것 하나 귀 기울여 듣지 않을 수 없다. 마침 앨범 발표 즈음에 있었던 고상지의 서울 재즈 페스티벌의 공연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참에 고상지와 음악, 그리고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다.

인터뷰는 지난 6월 20일에 합정역 인근에 위치한 카페 비플러스에서 진행됐다. 인터뷰에는 이번 앨범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온라인 소개글을 작성한 바이올리니스트 윤종수가 함께 했다. 윤종수는 고상지와 오랜 시간 호흡을 맞췄으며 그 외에도 수많은 아티스트들과의 협업, 세션 활동을 하고 있는 뛰어난 바이올린 연주자다. 본 인터뷰를 통해 [Ataque del Tango]를 중심으로 고상지의 음악 세계, 그리고 고상지와 윤종수의 음악 활동에 관해 하나하나 조명하고자 한다.  너무나 진솔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고상지와 윤종수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Q: 개인적으로 [Ataque del Tango]가 세상에 나온 것이 무척 반가웠다. 상지 씨가 연주했던 피아졸라를 워낙 좋아해서. (웃음)  팬들 다수가 상지 씨의 피아졸라를 좋아하지 않나. 반도네온 연주자로서 알려졌으니 이제서야 탱고 아티스트로 크게 한걸음 나아간 느낌이다.

고상지: 스스로를 탱고 연주자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옆에 있는 종수 씨와 비교해봐도 지금 그렇게 탱고에 몰입 하지는 않는 것 같고. 탱고를 너무 사랑해서 냈다기 보다는… 이 앨범은 내지 않으면 안됐어서 낸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 앨범은 고상지, 최문석, 윤종수. 이 세 사람이 각자 자기 앨범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혼신의 힘을 쏟아 부은 앨범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Q: [Ataque del Tango]가 나오게 된 경위는?

고상지: 이 앨범에는 아스토르 피아졸라와 카를로스 가르델의 곡들이 담겨 있다. 이전부터 라이브로 연주해 왔기에 앨범으로 내달라는 요청이 많이 있어서 언젠가는 내려고 했다. 근데 어느 순간 피아졸라와 가르델의 레코딩은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데 굳이 나까지 낼 이유가 있는가 하는 생각에 부딪혔다. 그런 고민을 하던 중 갑자기 ‘어떤’ 필요성을 느꼈다. 머리보다는 몸이 먼저 시작했다.

앨범 녹음에는 지금 이 자리에 없는 피아니스트 최문석 씨가 참여했고 공동 프로듀서를 맡았다. 문석 씨는 쿠바 재즈를 해서 펑크, 라틴 쪽에 베이스가 있다. 같이 작업하다 보니 문석 씨의 스타일이 들어가서 굉장히 리드미컬해졌고 중간에 재즈 같은 프레이즈가 튀어 나왔다. 전체적으로 원곡이 가진 색깔보다 조금 더 굉장히 펑키하게 나왔다. 종수 씨는 클래식 바이올린을 베이스로 삼으면서 아이리쉬, 컨트리, 재즈까지 다양하게 할 줄 안다. 사실 우리 중에서 따로 탱고 연주 동영상까지 보면서 연구할 정도로 가장 탱고에 빠져 있는 사람이다. (웃음) 그런 차별성이 느껴지는 와중에 내 사부님인 코마츠 료타(Komatsu Ryota)의 베이시스트면서 전통 탱고에 뛰어난 다나카 신지(Shinji Tanaka)가 이번 앨범에 참여했다. 우리의 펑키한 탱고와 전통 탱고가 썩 잘 어울렸다.

Q: [Ataque del Tango]을 작업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앞서 말한 펑키하면서도 연주자들의 특색을 살린 연주 외에 또 있을까?

고상지: 그것들을 의도적으로 살리려고 한 것은 아니고 연주자들 덕분에 색깔이 나왔다는 게 맞는 것 같다. 이번 앨범에는 연주자마다 각자의 즉흥연주가 많이 나온다. 우리만의 개성이 섞이니까 소리가 굉장히 좋더라. 종수 씨와 문석 씨랑 기타의 김동민이 갑자기 재즈 스케일로 나오는데 탱고인데도 재즈 같기도 하면서 모난 듯이 튀지도 않고 잘 섞였다. 나는 이번에 즉흥연주에는 참여를 안 했는데 나보다는 다른 연주자들의 장점을 살리려고 했다.

윤종수: 피아졸라가 작업한 원곡들에는 본래 피아노와 기타가 참여해서 즉흥연주를 넣기가 어렵지 않았다. 근데 원곡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한 페르난도 수아레스 파스(Fernando Suarez Paz)는 즉흥연주를 안 했다. 이번 앨범 가운데 ‘Libertango’라는 곡이 있는데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알 정도로 유명한 곡이니까, 우리는 그보다 더 차별성이 있어야 하지 않나 싶어서 즉흥연주를 넣었다. 애초에 공연 때마다 해서 특별한 편곡은 들어가지 않았지만 원곡의 레코딩과 비교했을 때 바이올린 즉흥연주가 들어갔다는 점에서 ‘Libertango’에 한해서는 조금 차별화되지 않았나 싶다.

고상지: 앨범 속지에도 응용하긴 했는데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탱고 아티스트 중 하나인 오라시오 살간(Horacio Salgán)이란 분이 예전 인터뷰에서 하신 말씀 중에 이런 게 있다. 요즘 아르헨티나 젊은이들이 일렉트로닉 탱고 하는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일렉트로닉 탱고든 뭐든 하는 건 좋은데 전통 탱고를 확실히 공부를 하고 하느냐와 하지 못하고 하느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걸음마도 못 하는 사람이 어찌 날 수 있겠는가” 하는 비유를 하셨다. 그렇다고 내가 걸을 줄 안다는 게 아니라, (웃음) 이번 앨범에 참여한 연주자들은 다 전통 탱고를 공부를 했다는 말을 하고 싶다.

왜냐하면 탱고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가 뒷골목의 남녀가 끈적하게 마음을 주고 받으면서 섹시하게 춤을 추는 장면인 것 같은데…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전통 탱고를 공부 하지 않은 사람이 탱고를 하면 거칠고 끈적끈적하게 연주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이미지일 뿐이고 연주법은 아예 다른 세계다. 이 앨범은 그런 것과는 틀리다. 우리 멤버들은 탱고를 오랜 시간 연습했고 카피했다. 당연히 좌절도 많이 해봤다. 그런 시간을 겪다가 이제서야 우리는 탱고를 연주해도 자기 색깔을 낼 수 있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전통적인 것들에 좌절을 겪은 사람들이 이번 앨범을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분명 전통 탱고와는 차이가 있는… 우리 연주자들만의 색깔을 녹여낸 탱고 음악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Q: 수록된 9곡 중 특별한 선정 기준이 있었나?

고상지: 주로 라이브에서 했던 곡 중에 많은 분들이 원하는 곡 위주로 골랐고, 연주해보면서 다시 선곡을 했다. 거기에다 이번 앨범을 위해서 ‘Bordel 1900’이 새로 들어갔다. 이 곡은 그냥 해보고 싶었다. <탱고의 역사 시리즈>를 다룬 곡 중 하나인데 원래 시리즈가 Bordel 1900 – Cafe 1930 – Night Club 1960 – Concert d’Aujourd’hui. 이렇게 네 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시리즈를 전부 해보고 싶었지만 제대로 편곡이 나온 ‘Bordel 1900’만 넣게 되었다.

Q: 앨범 녹음하는 데 있어서 가장 어려움을 겪은 점은 무엇이었나? 앨범 속지에 쓴 글 중에 “나와 윤종수의 광기어린 집착…”이라고 적혀 있던데 무슨 의미인가?

고상지: 이게 뭐냐면 이번 앨범에서 우리 둘이 가장 많이 녹음을 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정상적인 수준에서 벗어났더라. (웃음) 다시 하겠습니다, 다시 하겠습니다… 그렇게 수 차례 다시 했으니까. 셀 수 없을 정도로 마음에 들 때까지 녹음했다. 녹음을 봐주시는 레코딩 엔지니어 분 입장에서는 정말 괴로웠을 것 같다. 제일 죄송했던 사람이 녹음 받아주시는 신대섭 엔지니어다. 아마 그때의 프레이즈가 그분 꿈에 나왔을 거다. 나와 더불어 연주하면서 제일 고분분투한 사람은 윤종수다.

윤종수: 일반적인 연주자들은… 그러지 않지. 우리는 상당히 심했다. (웃음)

고상지: 그래서 이번 앨범 중 제일 많이 듣게 되는 소리가 “이거 바이올리니스트 앨범 아니야?”다. 이 앨범은 종수 씨도 자기 앨범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녹음에 많은 시간을 썼다.

윤종수: 상지 씨는 그렇지 않지만 나는 동시녹음에 대한 로망이 있다. 그것을 해내는 사람은 엄청난 고수같고. 해내면 방금 전에 나보다 지금이 훨씬 잘하는 사람이 될 것 같달까. 그래서 당연히 동시녹음을 하려고 했다.

고상지: 근데 그렇게 동시녹음을 고집해야만 한다면 나는 평생 음악 안 할 거다. 낼 이유가 없다. 별로 듣고 싶지 않기 때문에.

윤종수: 동시녹음을 했는데 듣고 싶은 만큼 연주를 해내는 것이 내 로망이다. 문제는 그럴려면 죽을 때까지 해야 한다. (웃음)

고상지: 나중에 찾아보니 피아졸라도 동시녹음을 안 한 게 있었다. 들어봤는데 완전 똑같더라. 그러니까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동시녹음이든 후시녹음이든 똑같다면, 그저 최대치가 나올 때까지 계속 녹음하는 수 밖에 없다. 그것이 라이브와 녹음의 차이다. 두 개가 별 차이가 없다면 굳이 1년 동안 고생할 것도 없이 그냥 한번에 녹음하면 된다. 근데 그렇게 하다가는 평생을 해도 안될 것 같다.

윤종수: 그렇지. 그러면 완성도가 너무 낮을 것 같다. 이런 앨범이 절대로 나올 수가 없었겠지. (다들 웃음)

고상지: 내가 봤을 때는 앨범이 만족스럽게 잘 나왔고 괜찮다. 그렇지만 레코딩 엔지니어와 믹스 엔지니어 두분은 정말 고생하셨다. 그분들이 없었으면 절대 이 앨범을 이정도 퀄리티로 만들어 낼 순 없었을 것이다.

Q: 앨범 수록곡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을 꼽으라면?

고상지: 나는 ‘Adios Nonino’, ‘Chin Chin’, ‘Primavera Porteña’. 이거 세개… 아, 다 마음에 든다. 그렇게 고생을 했는데. (웃음)

윤종수: 나는 ‘Chin Chin’하고 ‘Primavera Porteña’ , 그리고 ‘Libertango’. 그렇게 많은 곡을 녹음하지는 않았지만, 이번 앨범에 실린 내 소리는 여태까지 녹음된 것 중 가장 예쁘게 잘 뽑혔다. 특히 이 세 곡에서 바이올린 소리가 너무 훌륭했다. 엔지니어 분들의 힘이다.

Q: 듣고 보니 [Ataque del Tango] 앨범 녹음 전 과정이 기억에 남는 일이겠다.

고상지: 그렇다. 지금 말하는 것 이상이다. 더불어서 ‘El Dia Que Me Quieras’하고 ‘Oblivion’은 노트가 적기 때문에 쉽게 넘어가는 트랙이라고 예상했는데 그것조차 너무 어려웠다.

윤종수: 아까 했던 이야기를 약간 더 이어서 하자면, 우리는 우리가 엄청나게 반복해서 녹음한 것에 대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당연히 그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음반의 완성도에 대한 기준이 다른 사람들과는 좀 다른 것 같다. 의외로 유명 해외 연주자들의 레코딩을 들어보면 우리 기준보다 관대한 것 같아서 놀랄 때가 있다.

고상지: 당연히 그들이 엄청나게 잘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근데 가끔 ‘어, 여기 음정 낮은데. 여기 음정 틀렸는데 왜 넘어갔지?’ 하는 부분이 생각 외로 많다.

윤종수: 우리라면 그것은 말도 안된다. 근데 상지 씨가 그러더라. 우리보다 훨씬 잘 하시는 분들임에도 완성도의 기준치가 낮은 편이라고. 본토 탱고 뮤지션들의 성향이라고도 해야할 것 같다.

고상지: 탱고에서는 그런 음정과 박자보다 실제로 ‘소울’이 더 중요하다. 탱고 뮤지션은 소울 보다는 ‘심장’이라는 뜻에서 ‘꼬라손(Corazón)’이라고 표현한다. 꼬라손이 중요한 것은 알지만 잘 안된다. 그래서 더 집착했고…  ‘El Dia Que Me Quieras’와 ‘Oblivion’ 같은 곡은 노트가 적어서 심장 표현이 더 잘 안되더라. 이건 나의 테크닉의 부족 탓이다. 끝까지 갔다가 계속 반복했던 게 이 두 곡이다. 아무튼 그건 그거고, 나는 이번 앨범에서 내 심장을 다 내놨다. (웃음)

윤종수: 나도 ‘Oblivion’이 아쉽긴 하다. 하지만 부족한 능력 안에서 최대한 보여드리려고 했다. 상대적으로 느린 곡들이 아쉽고 빠른 곡들은 내 기대보다 너무 잘 나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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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지의 앨범 [Ataque del Tango]와 [maycgre 1.0] ©jongkyukim

Q: 새 앨범이 나왔는데 발매 공연을 할 예정인가?

고상지: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이다. 2014년에 나온 1집 [maycgre 1.0]의 경우에는 자작곡으로 채워진 앨범이니 당연히 발표하는 의미에서 발매 공연을 했다. 그렇지만 이번 [Ataque del Tango]는 라이브에서 항상 하던 곡들을 스튜디오에서 그대로 녹음 했을 뿐이다. 내 의지보다는 앨범을 듣고 싶어하는 리스너들의 요청에 의해 만든 앨범에 가깝다. 그러니 굳이 원래 하던 공연을 또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지금 그런 고민을 하고 있다. 일단 다른 콘셉트의 공연을 생각해두고 있긴 하다.

Q: 앨범 디자인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이번 [Ataque del Tango]은 커버 하나부터 열까지 너무 잘 나왔다. 곡 설명이 전부 들어가서 탱고 음악 입문용 음반으로도 좋을 것 같다. 상지 씨가 직접 작성한 텍스트를 읽는 것도 재미있다.

고상지: 감사하다. 커버 하나까지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정규 1집 앨범 때는 많이 팔릴 것이라 생각도 안 했기 때문에 제작비를 최소한으로 했다. 실제 보면 알겠지만 그림만 덩그러니 있어서 좀 심심하다. 1집을 샀는데 아무 글이 없어서 아쉽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사주셔서 감사하고 한편으로는 너무 죄송해서… 이번에는 그때 서운해 하셨던 분들을 위해서 제작비를 많이 쓰기로 하고 텍스트도 마구마구 넣었다. 정규 1집 때도 할 말이 참 많았는데 이번에는 그런 아쉬움이 없다.

고상지 앨범 [Ataque del Tango] 중 ©jongkyukim

고상지 앨범 [Ataque del Tango] 중 ©jongkyukim

Q: 앨범의 텍스트 중에서 인상적인 구절이 있더라. “수동적 창작이 아니라 그 곡을 들었을 때의 자신의 감정과 인상이 마치 메아리처럼 반사돼 나에게 도달된 ‘그것’을 표현하라고 했다. 오라시오 살간의 이 말씀이 그 후 나의 편곡과 작곡에 있어서 중요한 잣대가 되었다.’ 그 글을 읽으니 음악을 듣는데도 이해가 더 잘되는 것 같다. 혹시 오라시오 살간 하고는 만난 적이 있는가? 말이 나온 김에 아르헨티나에서 있었던 일도 잠깐 들려줬으면 한다.

고상지: 이 역시 그 분이 인터뷰에서 하신 말씀이고 항상 내가 머릿속에 담아두고 있는 생각이다. 공연도 많이 봤고 이 분의 음악을 정말 사랑한다. 얼마 전 그 분이 100세 생신을 맞이하셨다고 해서 아르헨티나에서도 난리가 났다. 계속 만수무강 하셨으면 좋겠다.

아르헨티나의 좋은 점은 이런 거장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다. 탱고의 본고장인 부에노스 아이레스만 해도 이런 분들이 모여 살고 계시는데, 어쩌다 해외 투어를 가시지 않는 이상 어렵지 않게 그들의 공연을 볼 수 있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공연을 보곤 했는데 공연료가 싼 것은 3000원 정도고 비싸도 3만원에서 5만원 하니깐 너무 좋았다. 공연이 끝나고 “너무 좋았어요. 근데 저 좀 가르쳐 주시면 안돼요?” 하면 연락처를 주셨고 나중에는 그분들께 배우고… 이런 삶이 보편화되어 있다.

Q: 지난 1집 앨범 [maycgre 1.0]의 각 곡들은 어떤 모티브를 가지고 쓰여졌는지도 물어보고 싶다. 고상지 씨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가지고 썼다는 이야기 정도만 알려져 있지, 자세하게는 언급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서.

고상지: 내 곡에는 여러 캐릭터의 이미지들이 섞여 있다. <베르세르크>의 그리피스와 <에반게리온>의 레이를 염두해두고 쓴 곡은 ‘Chivalry’다. <슈타인즈 게이트>의 크리스와 <에반게리온>의 아스카를 섞어서 ‘Red Hair Heroin’를 썼고. ‘Envy’는 <강철의 연금술사>의 엔비를 두고 썼다. ‘출격’은 <에반게리온>의 신극장판에서 나온 마리고. ‘홍제천의 그믐달’은 애니메이션의 엔딩곡처럼 쓰고 싶었던 곡이다. ‘暗’은 큰 의미 없이 마지막에 넣은 곡이고. ‘빗물 고인 방’은 애니메이션과는 상관없이 탱고적인 곡이다. 전에 양효주 영화 감독과 작업하면서 현대무용에 어울리는 곡을 써달라고 요청 받아 쓴 곡이다. 처음에는 1번 곡 ‘출격’을 타이틀 곡으로 하려고 했다가 나중에 ‘빗물 고인 방’으로 바꿨다. 이유는 (이)적이 오빠가 앨범을 들어보더니 “이게 제일 낫네” 라고 했고, 기왕이면 라이브가 가능한 곡을 타이틀로 하는 게 낫다는 의견에 정하게 되었다.

Q: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 취향의 폭은 넓은 편인가?

고상지: 폭은 좁다. 이른바 나 자신을 오타쿠라고 어필을 하지만 종수 씨와 문석 씨의 경우에는 작품 위주로 훨씬 많이 본다. 나는 한 캐릭터에 꽂히면 그 캐릭터만 판다. 훌륭한 것을 보면 그것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데… 마치 돌파구처럼 그 캐릭터에 대한 곡을 쓴다. 대체로 다른 애니메이션 팬 분들은 나보다 더 다양하게 보지 않나 싶다.

Q: 국내에서도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관련 축제가 자주 열리고 있는데 그곳에서는 공연 섭외 같은 게 안 들어오는가? 본인을 ‘오타쿠’로 소개하는 고상지 씨라면 그곳에서 공연하기에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에반게리온 메들리’도 공연 때 자주 하지 않은가.

고상지: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만 아직 없다. 다른 오타쿠 분들이 나한테까지 신경 써주지는 않는 것 같다. (웃음) 사실 오타쿠 분들께 인정받고 싶어서 대놓고 어필도 했는데 잘 안되서 지금은 포기했다. 나의 소중한 경력 중 하나는 부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겁쟁이 페달> 극장판 감독과 프로듀서를 인터뷰한 것이 있는데, 욕심 같아서는 더 많은 것을 하고 싶지만 그게 잘 안 된다. 대신에 일반인들을 영업하게 되었다. (웃음) 공연에 와주시는 분들이 가끔 <슈타인즈 게이트>나 <천원돌파 그렌라간>을 보신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비록 일부이긴 하지만.

Q: ‘고상지 밴드’라는 이름으로 고상지, 윤종수, 최문석이 함께 활동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세 사람이 함께 활동 하는 것인가?

고상지: 대체로 피아노는 최문석이고 바이올린은 윤종수이긴 한데… 사실 나는 팀 만드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다. 그냥 고상지만 이름을 올리면 반도네온 솔로 공연으로 아실 수 있으니까. 밴드라는 이름으로 올리는 거다. 고상지 밴드를 정식으로 결성한 것은 아니다.

윤종수: 정식으로 하기에는 각자 바쁘게 활동하는 것도 있다. 문석 씨는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는 것도 있고.

고상지: 윤종수 씨는 본인의 클래식 스트링 팀인 ‘필스트링’을 꾸려서 활동하고 있고 따로 세션 활동도 하고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고. 다들 그렇게 각자 활발하게 활동을 해야 돈도 벌 수 있다. 내 라이브 때 문석 씨와 종수 씨가 못 하게 되는 경우에는 다른 사람이 참여한다. 이 역시 고상지 밴드라는 이름을 쓴다. 그래서 고상지 밴드를 이 셋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물론 셋이 가장 오래하기는 했지만 각자 활동하는 게 더 익숙하다.

Q: 오래 같이 활동했는데 매주 합주를 하는지?

고상지: 문석 씨까지 한 4년에서 5년 정도 함께 했는데 지금 우리는 호흡이 잘 맞는다. 합주는 그렇게 많이 하지 않는 편이고 주로 개인 연습 위주로 한다. 개개인의 연마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공연이 잡히면 하지만 아무 것도 없는데 정기적으로 하진 않는다.

윤종수: 나도 음악하면서 정기적으로 합주를 한 적은 없었다. 최근에 컨트리 음악을 하는 ‘컨트리공방’이란 팀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이 팀은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 합주를 하고 있다. 나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컨트리 음악을 좋아하긴 하지만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주기적인 합주는 필요한 것 같다. 또 연주 외에도 좋은 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중이다.

Q: 상지 씨와 종수 씨는 함께 활동을 오래했다. 만나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는가?

윤종수: 한양대에서 클래식을 전공했다. 당시 나를 지도해주셨던 선생님과 함께 카이스트에 연주할 일이 있어서 갔는데 그때 상지 씨가 반도네온을 연주하러 왔었다. 알고보니 선생님이 상지 씨의 이모더라. (웃음) 물론 그건 나중에 알았다. 아무튼 그때 첫인상이 굉장히 강렬했다. 지금도 독특하지만 그때는 끝판왕이었다. (웃음)

고상지: 나중에 밥을 먹을 일이 있었는데 연주자석이 정해져 있었다. 근데 동석한 윤종수 씨가 자꾸 나한테 몇살이냐고…

윤종수: 상지 씨가 선생님의 아끼는 조카라고 하니까. 게다가 처음 만나기도 했고 다루는 악기도 신기해서. 나는 그냥 평범하게 한국에서 사람과 사람이 알아가는 방식으로 질문한 것이었다. (웃음)

고상지: 나는 처음 만난 사람인데 나이를 물어보길래 좀 불쾌했다.

윤종수: 한국식이었지. (웃음) 그때는 그냥 참 특이한 친구구나 하고 헤어졌다. 나중에 잠깐 보긴 했는데 그때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고. 그러다 5년 정도 지나서 상지 씨가 한국에서 막 활동을 하려고 하던 참에 다시 만났다. 탱고 음악에서 바이올린은 거의 필수적으로 중요한 악기인데 상지 씨가 멤버를 찾고 있었다. 그때 내가 어떤 공연에서 대타 같은 것으로 참여를 한 적이 있는데 서로 잘 맞았다. 문석 씨는 나보다 먼저 함께 하고 있었다.

고상지: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연주자의 개성을 떠나 내가 일일이 참견하지 않아도 알아서 탱고에 빠져들고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런데 종수 씨는 말 그대로 정말 그렇게 했다. 내 사부님인 코마츠 료타의 사모님이 탱고 바이올리니스트인 콘도 쿠미코(Kondo Kumiko)인데, 그 분에게도 레슨을 받고 혼자서 연습을 해서 이제는 전통 탱고를 너무 잘한다. 아르헨티나에서 공부한 나보다 더 전통 탱고를 익히고 있다.

나는 아예 전통 탱고를 포기했다. (웃음) 그쪽을 8-9년 공부를 했지만 지금은 듣는 것도 하는 것도 너무 힘들다. (웃음) 나중에 다시 좋아지기는 할테지만 하도 좌절을 많이 해서… 지금은 애증(愛憎)에서도 증에 해당하는 시기랄까. 그러다보니 더욱 다른 음악들만 듣고 있다. 종수 씨는 여러가지를 할 줄 알면서도 탱고에 빠져 있는 사람이다.

Q: 코마츠 료타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작년에 홍대 벨로주에서 코마츠 료타와 함께한 <도쿄 반도네온 클럽>의 공연을 봤는데 굉장히 좋았다.

고상지: 원래 <도쿄 반도네온 클럽>은 일본의 반도네온을 배우는 클럽 같은 단체다. 그날 공연은 반도네온 연주자만 아마추어고 나머지 연주자들은 프로였다. 쉽게 말해 반도네온을 위한 공연이라고 보면 된다. 사부님이 정기적으로 레슨생을 지도하러 한국에 오시는데, 마침 레슨생들도 그 공연에 올릴 겸해서 나랑 종수 씨도 참여했다. 그날의 레퍼토리는 완전한 전통 탱고였고 딱히 편곡이 안 들어간 오리지널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올해도 지난번처럼 벨로주에서 하는데 8월 27일과 28일에 한다. 이번에는 좀 더 업그레이드 될 예정이다.

Q: 특히 마지막에 코마츠 료타가 연주한 ‘Adios Nonino’가 매우 훌륭했다. 

고상지: 그때 바이올린은 사모님이었고 베이스가 이번 앨범에 참여한 다나카 신지였다. 거의 오리지널 스코어로 연주했다고 보면 된다. 아르헨티나 탱고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레오폴트 페데리코(Leopoldo Federico)의 편곡을 그대로 살렸다. 그날의 공연은 나에게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왜냐하면 코마츠 선생님만의 편곡이 있음에도, 전통 탱고를 재현한다는 그날의 취지에 맞게 그대로 마에스트로의 연주를 살려서 보여주었다. 역시 사부님이다. 딴 소리지만 항상 사부님이 하시는 말씀 중에 “전통 탱고를 파지 않은 사람이 피아졸라를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연주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도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혼나기만 하고 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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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홍대 벨로주에서 열렸던 <고상지 밴드 & 유정연’s Orquesta Tipica Pacifico> 공연 중 ©jongkyukim

Q: 1년에 1번씩 여러 대의 반도네온과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콘트라베이스로 구성된 전통 방식의 탱고 오케스트라인 <퍼시픽 탱고 오케스트라>에서도 참여하고 있다. 멤버들이 아시아의 탱고 연주자들로만 모인 것도 있고 여러모로 인상적인 공연이었다.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작곡가로 유명한 유정연 씨가 주축인 프로젝트로 알고 있다. 매년 진행했는데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는가?

고상지: 그건 유정연 오빠가 아예 리더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다. 우리는 그냥 세션으로만 참여해서 많이 알지는 못한다.

윤종수: 거기서 우리는 완전히 세션으로만 참여하고 있다. 거의 일본 연주자들로 구성되는데… 다나카 신지와 코마츠 료타의 천재 제자라고 불리는 키타무라 사토시(Satoshi Kitamura) 등이다. 연주와 섭외, 스케줄 관리, 곡 선정, 편곡 같은 것들을 전부 유정연 선생님이 하고 있다. 우리는 세션으로만 참여하는 프로젝트다. 그런데 매번 벨로주의 박정용 사장님부터 시작해서 관객들에게 매우 긍정적인 피드백이 돌아왔다. 연주 때마다 미흡한 면이 보이는데도 사람들이 너무 사랑해주시는게 느껴지더라. 연주자로서도 감사하고 있다. 1년에 한 번 정도면 많이 하는 편도 아니기도 하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 갔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공연도 공연이지만 같이 하는 연주자들이 너무 좋다.

고상지: 나도 키타무라 사토시랑 다나카 신지와의 공연은 돈 내고서라도 하고 싶을 정도다. (다들 웃음)

Q: 두 사람은 악기를 오래 연주했는데 한국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고상지: 예전에 막연히 음악을 하고 싶었을 적에는 꿈도 못 꿨던 일들이 지금 반도네온을 하면서 벌어지고 있다.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반도네온이란 생소한 악기를 연주할 수 있어서 이렇게 먹고 살고 하는 것 같다. 앞으로도 음반을 만들고 편곡도 하면서 단독공연도 하고 그런 활동들을 계속할 예정이다. 이 모든 것이 반도네온에서 나온다. 나도 그 사실을 잘 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한국에서 음악하는 게 좋다. 아르헨티나에 오래 안 머물고 공부 끝나자마자 바로 한국으로 돌아와서 활동한 것도 그런 이유다. 주변 사람들은 힘들다고 하는데 나는 크게 와닿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윤종수: 내가 전공한 클래식으로 안정된 직장을 얻으려면 딱 하나 방법이 있다. 바로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회사원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에는 굉장히 힘들고 한정적인 일이다. 그런것에 비해서 속칭 실용음악 쪽은 안정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게 하나도 없다. 그저 본인이 일종의 회사 같은 것이 되어서 자기가 다 헤쳐 나가야만 한다. 또 가르치는 것은 안정적이기 보다는 불규칙하다. 레슨을 받는 사람이 없으면 돈을 못 버니까. 나 역시 복을 많이 받아서 돈 때문에 힘든 적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저것 많이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보면 나와 상지 씨. 둘 다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말이 나온 김에 상지 씨에 대해 한 마디만 보태자면… 물론 운이 좋았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내가 옆에서 봤을 때 정말 미친듯이 열심히 하고 부지런하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가끔은 나도 반성을 한다. 내가 확신해서 말할 수 있는 사실은 이 친구보다 부지런한 뮤지션은 거의 없다는 거다. 반도네온을 다루는 연주자가 별로 없는 한국이라서 잘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실력이 뒷받침이 되었기에 이런 위치에 있을 수 있는 것이고 그만큼 인복도 따르는 것이다.

고상지: 내 실력이 향상할 수 있도록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 그렇게 안 하면 언제든지 뒤처지니까.

Q: 라이브가 좋은가 녹음이 좋은가?

윤종수: 녹음은 라이브보다 5배 이상 부담되는 것 같다. 개인 목표치가 높은 편이라서 녹음이 크게 부담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라이브는 라이브라서 실수가 있더라도 그냥 웃으면서 넘기는 편이다. 라이브가 마음 편하다.

고상지: 물어볼 것도 없이 녹음이다. 라이브는 매번 너무 떨려서 죽을 것 같다. 무대 올라가기 전에 ‘언제까지 이렇게 떨어야 하나’ 하고 고민한다.

윤종수: 개인적으로는 장르에 따라 다른 것 같다. 탱고는 부담이 덜하고 클래식도 그렇다. 근데 컨트리는 심하다. 또 재즈 연주를 할 때는 상지 씨가 느끼는 것 만큼 떨리는 것 같다. 너무 부족한데도 너무 잘 하시는 분들과 할 기회가 많이 있다보니… 이전에는 라이브가 부담된다는 상지 씨의 말에 크게 와닿지 않았는데, 내가 재즈 연주를 할 때부터 똑같은 입장이 되버리니까. 그때서야 이런 심정이구나 하고 깨달았다.

고상지: 스튜디오에 있으면 하나도 안 떨린다. 되게 냉정하게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는데 무대는 단 한 번 뿐이니까. 라이브에 너무 부담을 느끼면 심장이 빨라지면서 기분이 이상해진다. 집에서 연습할 때까지는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해도 무대에 올라가면 아무 기억이 안 난다. 연주자들이 심장 박동수를 낮추기 위해 먹는 인데놀이라는 약이 있는데, 언젠가 한번 그것을 잘못 먹었더니 연주 중에 헛것이 보였다. 원채 내가 저혈압이라… 그 방법도 안되겠더라. 아무튼 그런 이유로 무대가 힘들다.

솔직하게 말하면 난이도가 쉬운 연주는 하나도 안 떤다. 근데 내 이름으로 올라가는 공연은 난이도가 높고 어렵다. 노트도 많고 모든 게 톱니바퀴처럼 다 맞아야 한다. 그런데 세션을 할 때나 간혹 쉬운 공연에는 뭐, 쉽게 한다. (웃음) 하지만 스튜디오에서는 하고 싶은 것을 정확히 할 수 있기 때문에 녹음이 좋다.

Q: 음악을 하면서 좋은 점과 안 좋은 점은?

고상지: 좋아하는 뮤지션, 선배님들에게 연락 올 때가 좋다. 또 내가 만든 곡을 들려줬는데 사람들이 좋아해줄 때가 좋다. 안 좋은 점은 너무 많은데… 라이브에서 잘못 했을 때가 너무 힘들다. 워낙 라이브 일정이 많은데 한 번 자괴감이 쌓이면 좀처럼 풀리지 않은 채로 지나는 거니까 정말 미칠 것 같다. 대부분의 삶이 좌절의 삶이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이 일을 못했을 때 기분 안 좋은 것처럼.

윤종수: 대부분의 뮤지션들이 그렇듯이 음악을 너무 사랑해서 연주를 잘 했을 때는 너무 좋고, 좋은 음악을 했을 때도 너무 좋다. 안 좋을 때는 상지 씨와 비슷한 것 같다. 잘못하면 심하게 좌절감에 빠진다. 근데 우리 둘은 그 기분이 좀 엄격한 것 같다.

고상지: 무대에서 떨리는 것은 익숙해지지 않지만 이걸 넘어서야 다음 곡을 쓰고 그렇게 음악을 계속할 수 있다.

윤종수: 그런 것을 견뎌야 눈꼽 만큼이라도 발전이 있고 경험이 쌓이는 것이겠지.

Q: 최근에 겪은 가장 인상 깊었거나, 영감을 줬던 일은?

고상지: 영화 <대니쉬 걸(The Danish Girl)>이다. 주연 배우인 에디 레드메인(Eddie Redmayne)이란 배우를 엄청나게 파고 있다. (웃음) 원래 애니메이션 음악을 좋아한다. 싸우거나 날아다니는 전투 장면에 나오는 음악… 그러니까 자극적이면서 흥분시키는 음악 위주로 좋아하다가 이번에 잔잔한 <대니쉬 걸>의 음악에 꽂혀서 하루종일 듣고 있다. 원래 영화 음악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없었는데 지금은 엄청나게 하고 싶어졌다.

윤종수: 지금 결혼한 지 1년이 좀 넘었는데 결혼하기 전보다 연습량이 너무 줄었다. 엄청 게을러졌다고 보면 된다. 스스로 알고 있고 이러면 안된다고 아는데도… 연주자마다 바이오리듬이 있긴 하다. 연습하다가도 안 하는 주기말이다. 그래서 안 하는 기간을 최대한 짧게 해야 되는데 최근에 되게 길었다. 그러던 때에 최근 어떤 공연을 본 적이 있었는데 정말 충격적이었다. 그날 이후로 개인적으로 연습을 많이 하고 있다.

고상지: 실력이 좋았나?

윤종수: 아니, 너무 못하더라. 기대를 많이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정도일 줄은…

고상지: 떨어서 그런거 아냐?

윤종수: 그렇다고 해도 실제 공연에서 못해봐라. 바로 못한다는 소리 듣지 않나. 그러니까 떨든 안 떨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고상지: 그건 그렇다. 오늘 이야기 중 가장 인상적이다. 갑자기 연습이 엄청 하고 싶어졌다. (웃음)

윤종수: 또 어제 어반자카파의 세션으로 공연을 했는데 여기서도 엄청난 자극을 받았다. 나보다 어린 친구들인데 곡도 잘 쓰고 노래도 너무 잘 하고… 이미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지 않은가. 그런 자극들이 있었다.

2016년 고상지 밴드의 서울 재즈 페스티벌 공연 중 ©jongkyukim

2016년 고상지 밴드의 서울 재즈 페스티벌 공연 중. 비브라포니스트 이희경도 함께 했다 ©jongkyukim

Q: 이번에 서울 재즈 페스티벌에서 상지 씨의 공연을 보았다. 그때 들은 ‘무한의 유피’, ‘성층권’, ‘사이타마’ 같은 신곡들을 앨범에서 만날 수 있을까?

고상지: 정규 3집에 실릴 예정이다. ‘무한의 유피’는 <헌터 X 헌터>에 나오는 유피라는 등장인물을 가지고 쓴 곡이다. 유피를 처음부터 좋아한 것은 아니고 나중에 좋아하게 되었다. 그 만화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가 힘이 쎄지만, 유피가 각성하는 모습은 너무 멋졌다. ‘무한의 유피’는 말 그대로 유피는 무한이란 의미다.

사실 ‘무한의 유피’는 애니메이션 <천원돌파 그렌라간>에서 먼저 모티브를 얻었다. 거기서 얼굴이 없는 적이란 의미의 무간이란 적 세력이 나온다. 무간들이 나올 때 음악이 웅장하고 너무 좋아서, 그것에 자극을 받아서 곡을 썼다. 근데 작업이 더디던 중에 <헌터 X 헌터>의 유피를 알게 되면서 마침내 마칠 수 있었다. 그래서 제목이 ‘무간’에서 ‘무한의 유피’로 바뀐 것이다. 애니메이션 중에 <무한의 리바이어스>라는 작품이 있는데, 비슷한 어감이기도 해서 정했다. 아마 다음 앨범 곡 소개에 이 이야기는 쓸 것이다. 아무래도 유피에 대한 애정이 크기 때문에 곡 자체에도 애착이 크다. <원펀맨>을 모티브로 삼은 ‘사이타마’의 경우에는 제목이 일본어라서 나중에 바뀔 수 있다.

Q: 같은 자작곡 앨범으로서 3집은 1집의 연장선이 되는가? 또 1집 때의 ‘출격’ 같은 뮤직비디오를 기대해도 좋을까?

고상지: 원래 [Ataque del Tango]는 자작곡이 아닌 커버 앨범이라서 2집으로 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근데 이번에 다들 혼신의 힘을 다 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나한테도 존재감이 크다. 그러므로 [Ataque del Tango]가 2집이 되었다. (웃음) 앞으로 나올 정규 3집은 자작곡이 담길텐데 단순히 1집의 연장선이라기 보다는… 그냥 나의 음악적 색깔은 원래부터 자작곡에 있다고 보면 된다.

사실 나의 음악가적인 자아는 반도네온 연주자가 아니다. 정규 1집 때는 작곡가로서 나를 더 어필하고 싶었고, 이번 앨범에서는 프로듀서로서 공짜 반도네온 세션을 쓰는 것 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다. 원래 이번 [Ataque del Tango] 앨범에 기타와 바이올린 듀오만 들어간, 종수 씨가 주인공인 곡을 하나 실을려고 했다. 아쉽게 들어가진 못했는데… 어쨌든 아마 다음 앨범에는 반도네온이 덜 들어가는 앨범이 나오지 않을까.

이번 앨범에서는 뮤직비디오를 제작할 계획은 없지만 나중에 ‘출격’ 같은 자작곡이 새로 나온다면 만들 계획은 있다. 곧 작업에 들어갈 정규 3집에서는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싶은 컨셉이 2개나 있다. 근데 진짜로 하려면 내가 돈을 많이 벌어야겠지. (웃음)

Q: 10년 후에 어떻게 될 것 같은가?

고상지: 내일이나 오늘이라도 사고로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의미없음, 이다.

윤종수: 훨씬 더 연주를 잘 하게 되고 모든 장르를 하고 나중에는 해외 투어를 다닐 수 있었으면 좋겠다.

Q: 뮤지션으로서 언젠가 서보고 싶은 무대가 있다면?

고상지: 라이브 무대에 대해서는 특별히 꿈꾸거나 하지 않는다. 웬만큼 같이 하고 싶은 사람들과 공연은 다 해 봤고 무엇보다 라이브는 일이란 느낌이어서… 그보다 스튜디오에서 계속 작업하고 싶다. 지금은 영화음악을 좀 해보고 싶은데 뭐든 좋을 것 같다.

윤종수: 말도 안 되는 거긴 하지만 몬트리올 재즈 페스티벌에 선다면 좋을 것 같다.

Q: 그러고 보니 이채언루트의 강이채 씨도 몬트리올 재즈 페스티벌을 얘기 했다.

윤종수: 이채 씨도 그렇게 이야기했나?

고상지: 한국에서 한 명만 나간다면 이채 씨가 가겠지. (다들 웃음)

윤종수: 두 명이 나갈 수도 있지. (웃음)

고상지: 페스티벌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피아졸라와 관련된 일화가 떠올랐다. 피아졸라가 1986년 스위스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무대에 섰을 때 일이다. 그때 피아졸라의 바로 전 무대가 되게 말도 안되는 사람…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였었다. 그래서 피아졸라도 다소 주눅이 든 채 무대에 올라갔다고 한다. 관중들은 피아졸라를 잘 모르기도 하고 악기인 반도네온도 생소하니까 시작 전부터 너무 조용했었다. 피아졸라는 ‘이 반응은 정말 좋거나 정말 최악이구나 둘 중 하나다’ 라면서 첫 곡을 연주했다. 그 10여 분이 지독하게 끔찍했다고 적었다. 그런데 곡이 끝나자 사람들이 일어나 엄청난 갈채를 보내며 소리를 질러댔다더라. (웃음) 아무튼 피아졸라도 그랬던 적이 있었다.

반도네온 연주자, 작곡가 고상지와 바이올린 연주자 윤종수 ©jongkyukim

인터뷰를 끝낸 고상지와 윤종수 ©jongkyukim

Q: 나중에 같이 작업했으면 하는 아티스트가 있다면?

고상지: 나는 일본 애니메이션 성우와 작업하고 싶다. 한국 라디오에서는 일본어가 방송에 나오면 심의에 걸린다고 하니 일본에서 해야할 것 같다. 내가 만든 배경음악을 깔고 거기에 일본어로 된 나레이션을 넣는 방식이다. 나는 일본어가 가진 목소리 울림을 너무 좋아하는데 애니메이션을 볼 때도 목소리의 중요성이 50% 정도다. 작업은 내가 좋아하는 성우들과 꼭 하고 싶다. 같이 하고 싶은 성우들이 너무 많다. 요즘 꽂힌 성우는 우치야마 코우키(Kouki Uchiyama)인데 <헌터 X 헌터>에서 메르엠이란 캐릭터를 했다. 최근 뜨는 애니메이션 중에서는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에서 나쁜 놈 역할을 했다. 정말 악의 절정인 역인데도 목소리가 너무 멋있어서 계속 응원하는 중이다. (웃음) 다음 주에 마지막이 나오는데 제발 말 좀 많이 해주길… 너무 조금 밖에 안해서. (웃음)

윤종수: 어제 같이 공연해서 아직 못 빠져 나오고 있는데 어반자카파다. 더 말할 필요도 없이 잘 한다.

Q: 앞으로의 활동은 어떻게 되는가?

고상지: 나는 이제부터 녹음 작업을 시작한다. 새 싱글과 정규 3집을 위해서. 싱글은 가을에 나올 것 같고 3집은 내년 초에 나올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곡을 쓰고 편곡하면서 작업을 할 것이다. 그저 좋은 성과가 나오길 바랄 뿐이다.

윤종수: 최근 1년 동안 지지부진하게 끌었던 새로운 팀을 만들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터틀 아일랜드 스트링 쿼텟(Turtle Island String Quartet)이라는 재즈 스트링 팀을 좋아해서 그런 팀을 만들고 싶지만… 재즈만 하기에는 여러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니까 다양한 장르를 소화할 수 있는 팀을 하려고 한다. 내가 아이리쉬나 컨트리 쪽 음악을 하기도 했으니까. 그런 음악들을 같이 할 수 있는 팀을 만드려고 한다.


고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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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규

음악과 글쓰기를 실천하고자 합니다. 앨범리뷰와 인터뷰 등을 씁니다. radio7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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