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정은 잊혀지지 않는다

미안하고 슬프게도 떠난 뒤에야 더 자주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같은 하늘 아래에서 노래 부를 때는 그저 듣기만 할 뿐, 딱히 관심을 주진 않았다가 이제서야 그 빈자리를 사뭇 깨닫고 있다.

11월 6일은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이진원의 기일이다. 뇌출혈로 세상을 뜬 지 어느덧 4년이 됐다. 그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도 그렇듯이 나 또한 힘든 나날을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그의 노랫말을 자주 흥얼거리곤 했다. 그 땐 지금보다 심각하게 ‘키 작고 배 나온 닭배달 아저씨'(<치킨런> 중)같아서 더더욱 그랬는 지도 모르겠다.

매년 11월 초에 한 번 쯤 생각한다. 달빛요정이 살아있었다면, 좀 더 밝은 노래를 부를 수 있었을까. 아니면 여전히 힘있는 목소리로 현실의 고단함을 표현했을까. 가을을 이전보다 즐겁게 보냈으리란 사실만은 명백하다. 그가 사랑하는 LG트윈스가 길고긴 부진을 씻고 2년 연속 가을무대를 밟았으니 말이다.

난 잊혀질거야 지워질거야
모두에게서 영원히
난 노래할거야 어디에서든
혼자서 가끔 이렇게

요정은 간다 이제 요정은 없다
그저 그런 인간이 되어
노래하겠지 또 어디에서든
혼자서 가끔 이렇게

초라한 숫컷이 되어
아무도 몰래
아무도 몰래

뒤늦게 그의 앨범을 찬찬히 들으면서 미안했다. 앨범 하나라도 살걸, 공연 한 번이라도 꼭 가볼걸이라는 후회를 했다. 노동요나 스터디송이 아닌 집중해서 들은 그의 노래는 들을수록 내게 위안이 됐고, 공연은 작은 노트북 화면과 조악한 음질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을만큼 힘이 넘쳤다.

‘잊혀질거야 지워질거야’라는 노랫말과 달리 그는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음악이 계속 되는 한, 야구가 계속 되는 한, 힘든 우리들의 나날이 계속 되는 한.

새롬

날 때는 절대음감이었으나 지금은 그냥 노래 좋아하는 직장인 피아니스트를 꿈꾸다가 지금은 피아노처럼 키보드를 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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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Response

  1. 요정을 잊지 못하며말하길

    재생 목록을 수없이 뒤바꾸면서도
    그의 노래는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네요..
    떠난 곳에서도 요정다운 노래로
    그의 존재감을 뽐내주길 바랍니다
    ps. 홈페이지를 통해 동생분이 아직 앨범을 팔고 계신걸로
    알고있어 저도 구입예정에 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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