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도 희망도 없는 22세기 태국으로

꿈도 희망도 없는 22세기 태국으로

SF 전문 출판사 ‘불새’가 몇 달 전 문을 닫았다. ‘불새’가 낸 SF총서는 결국 못보게 되는가 싶었는데, 뜻밖에도 또다른 장르문학 출판사인 ‘북스피어’에서 진행한 특별 이벤트에 이 SF총서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잠깐 고민하다가 마침 월급에 상여금이 포함되어 있길래 바로 질러버렸다.

재미있게 보고 있으면서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꿈도 희망도 없는 디스토피아’적인 결말을 가진 작품이 많지 않다는 점만은 아쉽다. 아마도 내가 지금까지 본 SF소설 중 최고로 꼽는 작품의 영향이지 않나 싶다. 멀지 않은 미래의 태국(이 대목부터 심상치 않다)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꿈도 희망도 없는 전개가 일품인 파올로 바치갈루피의 작품 <와인드업 걸>이 그 작품이다.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면서, 비슷한 작품이나 어울리는 음악을 찾아듣는 게 재미있는 소설을 찾았을 때의 버릇이다. 헌데 초반에 썼다시피 <와인드업 걸>은 굉장히 독특한 작품인데다가, 우리나라가 워낙 SF불모지라 비슷하다는 작품을 찾아봤자 대부분 한글로 번역되지 않았다. 특히 <와인드업 걸> 세계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배경이 ‘태국’이라는 점인데, 소설은 물론이거나와 영화나 게임 같은 다른 영역으로 확장시켜도 비슷한 작품을 찾기가 힘들었다.

그러다 얼마 전 접한 태국 일렉트로닉 밴드의 음악을 듣다가 이 작품이 다시 생각났다.

접하기 쉽지 않은 태국어에 몽환적인 보컬이 결합되면서 나오는 묘한 분위기가 <와인드업 걸>에 묘사된 태국과 잘 어울렸다. 계속 나오는 후렴구(คืนนี้ฉันจะลืมเธอ[Keun nee chun ja leum tur] ; 오늘밤 너를 잊겠어) 때문에 여자주인공 에미코의 테마곡 같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지난 주 내내 대표 이하 상사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서 상당히 울적했다. 거기에 오늘은 일요일. 이 노래가 포함된 Boom Boom cash의 유튜브 플레이어는 지금 책상에 놓인 보드카와 함께 내일 출근에 대비한 현실도피용 카드다. 적어도 내게는 다음 주말은 쉴 수 있다는 위안거리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