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 밤에 피리: 여름 끝자락에 마주한 음악의 숲에서

꿈의숲아트센터 ©jongkyukim
꿈의숲아트센터 ©jongkyukim

아직 여름의 흔적이 남아있던 9월 9일과 10일 양일간, 꿈의숲아트센터에서는 <밤에 피리>라는 이름의 공연이 있었다.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잔잔한 위로와 힘 있는 에너지를 전달하겠다’는 취지로 홍대 신에서 널리 인정 받고 있는 4팀인 라이프앤타임, 실리카겔, 김일두, 사비나앤드론즈가 참여했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는 뮤지션 각자의 귀를 사로잡은 ‘나를 잠 못 들게 하는 음악’을 주제로 선정해 한곡 씩 연주한다고 해서 더 눈길을 끌었다. 음악팬들에게는 홍대가 아닌 공간에서 홍대 음악을 만난다는 설레임을, 시민들에게는 일상의 탈출과 즐거움이 될 법한 기획 공연이었다.

작은 것 하나하나 세심하게 준비된 공연 

공연의 첫 날이었던 9월 9일 금요일에는 최근 독보적인 신예로 떠오르고 있는 실리카겔과 폭발적이면서 신선한 연주로 관객들을 매료시키는 밴드 라이프앤타임의 무대가 있었다. 입장할 때 미리 공연 셋리스트가 프린트 된 종이를 나눠줬는데 곡 제목과 순서, 공연 시간을 파악하기에 유용했다.

실리카겔은 그들만의 독특한 음악과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유쾌하게 무대를 이끌었다. 무대 뒤에 설치된 아트워크는 실리카겔이 연주할 때마다 알록달록하게 색깔을 바꿔가며 아름다운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이날 실리카겔은 정규 앨범 발표 전에 먼저 공개한 신곡 ‘sister’의 라이브를 최초로 선보였으며, 마지막 곡으로는 ‘나를 잠 못 들게 하는 음악’을 주제로 한 자작곡 ‘놀자’를 연주했다. 실리카겔은 바로 있을 ‘올해의 헬로루키’ 본선 경연과 이어서 정규 1집 발매, 그리고 10월에 있을 단독 공연 준비로 매우 힘이 들어가 있었다. 앙코르로는 밴드만의 절묘한 합이 돋보이는 ‘모두 그래’를 보여주었다.

잠시 인터미션 뒤에 라이프앤타임의 공연이 이어졌다. 언제나처럼 라이프앤타임은 파워풀한 연주를 선보이며 관객들의 흥을 이끌었다. 앞서 실리카겔 때도 그랬는데 홍대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의 공연이라서인지, 처음에는 밴드와 관객 모두 약간 경직된 자세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다들 몸을 들썩이기 시작했다. 중간에 베이시스트 박선민이 “구경 당하는 느낌이라 어색하지만 잘 즐겨달라” 라는 멘트를 하자, 갑자기 앞자리 관객들이 스탠딩 공연을 즐기기 위해 바로 일어서려고 했을 정도로 무대는 뜨거웠다. 라이프앤타임은 이번 꿈의숲아트센터 공연을 위해 오랜만에 준비한 곡 ‘숲’을 비롯해 가요 리메이크 프로젝트로 작업했던 ‘세상만사’, 라이프앤타임의 띠 동갑 세 멤버를 뜻하는 곡 ‘호랑이’까지 화끈하게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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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피리>에서의 실리카겔 ©jongkyukim

마지막까지 아름다운 감동과 위로를 선사했던 <밤에 피리>

둘째 날에는 솔직하고 확고한 노래를 하는 싱어송라이터 김일두와 꿈꾸듯 아름다운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밴드 사비나앤드론즈의 무대가 있었다. 토요일이어서 그런지 관객들에게서 전날과는 다른 여유와 편안함이 느껴졌다.

김일두의 공연은 시 같은 가사와 아름다운 조명, 여러가지 무대 효과들이 어우려져 한 편의 드라마틱한 무대를 선보였다. 기타 한 대와 목소리, 단 두 개의 악기임에도 그 울림은 공연장 전체를 천천히 휘감을 정도였다. 말하는 듯이 노래하고 노래하는 것처럼 말하는 김일두의 모습을 보면서, 내내 관객들은 그의 음악 세계에 깊이 심취해 있었다. 화려한 사운드는 없었지만 나지막히 공간을 채우는 그의 목소리, 가사가 주는 날카로운 삶의 고찰과 잔잔한 여운이 매력적이었다. 김일두는 ‘머무르는 별빛’을 첫 곡으로 하여 ‘왼 어깨’, ‘Old Train’ 등의 곡을 차근 차근 연주해 나갔다. 은은한 조명이 곡에 따라 조금씩 바꿔가며 그를 비추었고, 그가 가장 좋아한다는 ‘새벽별’을 부를 때 그 느낌이 고조에 다다랐다. 그는 ‘나를 잠 못 들게 하는 음악’으로 故 김현식의 미발표 유작 앨범에 실렸던 ‘그대 빈들에’를 불렀다. 낮고 조금은 소박하고 담담한 그의 목소리가 죽기 직전에 故 김현식이 녹음했던 그 곡의 느낌과 잘 어우러졌다. 마지막 곡으로 본인의 바람을 담았다고 이야기하던  ‘Until I`m 88 Years Old’를 부르며 조용히 주어진 시간을 마무리 하였다.

이어진 사비나앤드론즈는 이국적인 보컬의 목소리와 악기들의 소리를 겹겹이 쌓아서 만든 풍경으로 관객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보컬, 기타, 베이스, 키보드, 드럼이라는 꽉찬 풀 밴드 구성과 더불어, 무대 아트워크에서는 사비나앤드론즈의 음악에 맞춰 뮤직비디오 영상이 아름답게 흘러 나왔다. 초반에는 기타, 키보드와 함께 단촐한 구성으로 등장하여 노래하다가, 한곡이 지날때마다 슬그머니 멤버가 한명 씩 추가되었고, 최근에 발표한 2집 앨범에 실린 ‘Don`t Break Your Heart’에서야 마침내 풀 밴드 구성이 완성되었다. 그때부터 밴드의 영상을 담당하는 멤버가 무대 뒤편 공간에서 직접 영상을 틀었다. 다재다능한 멤버들이 모인 밴드답게 공간을 활용한 무대 구성까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세월호를 언급하면서 들려주었던 ‘우리는 모두(We Are)’, 위안부 할머니들을 생각하면서 만들었다는 ‘그리운 봄날’ 같은 곡들은 관객에게 울림을 가져다 주었다. 중간에 사비나앤드론즈는 ‘나를 잠 못 들게 하는 음악’으로 故 김현식의 ‘내사랑 내곁에’를 불렀다. 마치 앞서 공연한 김일두와 사비나앤드론즈가 한 편의 드라마처럼 연결되는 지점이었다. 뒤에는 네이버 웹툰에도 소개될 정도로 유명한 곡인 ‘Stay’의 한국어 버전과 ‘우리는 가슴만으로 사랑했네’로 이어졌다. 가히 <밤에 피리>의 하이라이트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손색이 없는 무대였다.

<밤에피리>에서의 사비나 앤 드론즈 ©juhwan_yoon

홍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차별된 사운드와 기획력이 돋보였던 무대

이번 <밤에 피리>는 꿈의숲아트센터의 기획력이 빛을 발한 공연이었다. 공연이 펼쳐진 꿈의숲아트센터 퍼포먼스홀은 객석 좌석 간의 높이가 높아서 어느 곳에 앉아도 좋은 시야로 무대를 내려다볼 수 있는 구조였다. 게다가 천장이 높고 울림이 좋아서 굉장히 훌륭한 사운드로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다. 실제로 홍대 공연을 자주 봤던 M의 필진(김종규, 윤주환)은 이번 <밤에 피리> 공연을 보고서 소리가 너무 좋아서, 전에 봤던 팀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깜짝 놀랐다. 조명과 무대 배치 역시 공 들인 흔적이 짙었고, 특히 무대 뒤 설치된 아트워크는 음악과 공간을 더욱 아름답게 꾸며 줄 정도로 신의 한수였다. 입장할 때 미리 나눠준 셋리스트도 좋았다. <밤에 피리>는 그야말로 최적의 인디음악 콘서트였다.

최근에 인디밴드 공연장들이 문을 닫아 점점 공연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이번 꿈의숲아트센터에서 열린 <밤에 피리>는 매우 뜻 깊다. 홍대가 먼 서울 북부 지역 시민들에게는 인디음악을 쉽고 편하게 다가갈 수 있게 한 자리였으며, 기존 인디음악팬들에게는 새로움과 앞으로를 기대할 수 있게 한 자리였기 때문이다. 매번 공연을 보러 공연장이 밀집된 서울 홍대 같은 번화가만 가다가 숲이 우거진 꿈의숲아트센터에 도착할 때의 신선한 충격은 잊을 수가 없다. 내 생활권 내에 이렇게 숲과 사람들에 둘러싸여 이런 양질의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무척 행복할 것이다. 이후에도 인디 뮤지션들과 꿈의숲아트센터가 <밤에 피리>를 지속적인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갔으면 한다. 그리고 <밤에 피리>처럼 다양한 장소에서 인디음악을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김종규

음악과 글쓰기를 실천하고자 합니다. 앨범리뷰와 인터뷰 등을 씁니다. radio7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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