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발장은 없다

장발장은 없다

200년 전에도 미혼모에게 세상은 가혹했다. <레 미제라블> 속 판틴은 사랑하던 남자에게 버림받고 홀로 아이를 키워야 하는 여인이다. 그녀는 공장에서 일하며 가까스로 양육비를 벌 수 있었지만 미혼모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일터에서마저 쫓겨나는 신세가 된다. 오갈 데 없는 그녀의 손에 남은 돈이라곤 일주일치 생활비뿐. 결국 판틴은 돈을 벌기 위해 머리카락을 잘라 팔고 생니를 뽑고 급기야는 사창가를 찾고야 만다. 가진 것 없는 그녀가 먹고 살기 위해, 사랑하는 코제트를 돌보기 위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영화 <레 미제라블> 갈무리

판틴의 선택은 과연 스스로에 의한 ‘자발적’ 결정이었을까? 최근 성매매특별법을 둘러싸고 성매매 여성의 형사처벌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성매매를 ‘성적 자기결정권’에 따른 하나의 노동으로 인정하고 성매매 여성에 대한 처벌을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일각에서는 그러한 조치가 구매 남성의 성적 자기결정권마저 정당화하면서 성매매 합법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현재의 논의에는 정작 성매매 여성의 ‘현실’에 대한 고민이 빠져 있다. 성매매 여성들이 왜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다른 삶을 살지 못하고 성매매를 지속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반성은 없는 것이다.

성매매는 단순히 ‘자기결정권’이라는 개인적 차원에서 따져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대부분의 성매매 여성이 ‘가출’과 ‘빈곤’으로 인해 성매매에 유입된다는 점을 미루어보더라도 이는 개인의 문제만으로 보기 어렵다. 힘없고 가난한 자들을 돌볼 수 있는 사회 안전망이 부재한 사회에서 성매매는 모든 계층의 인간에게 닥칠 수 있는 ‘사회문제’인 것이다. 성매매 여성을 ‘범죄자’ 혹은 ‘처벌의 대상’으로 규정할 수 없는 까닭이다.

영화 <레 미제라블> 갈무리

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제정된 이래로 포주나 성매매 알선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면서 업주와 성매매 여성의 종속관계가 일부 해소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다수 성매매 여성들은 여전히 ‘빚의 굴레’ 속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또, 성매매가 이뤄지는 현장에서 잡아야하는 단속의 특성상 성매매 여성들은 알몸 상태로 사진을 찍히거나 조사를 받는 수치를 감당해야만 한다. 다른 직업을 찾는 일도 쉽지 않다. 여성부 조사에 따르면 추산되는 성매매 여성의 수는 최소 약 27만 명에 달하지만 탈성매매를 위한 지원 시설은 전국에 39곳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성매매 불법화는 사회적 ‘피해자’인 성매매 여성의 삶을 더욱 힘들게 할 뿐이다. 성매매특별법이 성매매를 줄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풍선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처럼 법망을 피해 생겨나는 신종•변종 업소에서 성매매 여성의 인권은 새로운 방식으로 유린당할 수 있다. 정해진 구역 내에서만 성매매를 합법화하되 허용 지역 이외에서의 성매매는 철저히 단속하고 이를 위반한 업주와 알선업자를 강력하게 처벌해야 하는 이유다. 장기적으로는 성매매 여성들이 집장촌을 떠날 수 있도록 사회적응 및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등 성매매 여성을 위한 ‘탈성매매’ 방안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영화 <레 미제라블> 갈무리

소설에서는 뒤늦게나마 장발장이 나타나 판틴을 구원하고 어린 코제트를 보살핀다. 그러나 현실에 장발장은 없다. 도움의 손길이 없는 한 성매매 여성들은 먹고 살기 위해 자식을 키우기 위해 성매매에 뛰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본질적으로 성매매는 근절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사회가 지금 당장 그녀들에게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없다면 성매매 합법화를 통해 성매매 여성이 처한 상황을 개선하려는 현실적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그녀는 왜 몸을 팔아야만 했을까? 현실 속 수많은 판틴의 노래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나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지옥과는                    I had a dream my life would be
아주 다른 삶을 꿈꿨다네                                          So different from this hell I’m living
지금 보이는 것과는 아주 다른 삶을                        So different now from what it seemed
지금, 삶은 내가 꿈꿔왔던 꿈을 죽이고 말았네      Now life has killed the dream I dreamed
내가 꿨던 꿈, 그 꿈을                                               The dream, the dream I dreamed

영화 <레 미제라블> 속 판틴 ‘앤 해서웨이’가 부르는 ‘I Dreamed A Dream’

뮤지컬 <레 미제라블>(1995년작)에서 판틴 ‘루시 헨쉘’이 부르는 ‘I Dreamed A Dream’

영국 오디션 프로그램 <Britain’s got talent>에서 반향을 일으켰던 ‘수잔 보일’의 ‘I Dreamed A Dr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