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듣지 말고 대화하세요”

‘헤르메스(Hermes)’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뭘까? 유명한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를 떠올린 이도 더러 있을 것이다. 이제는 명품 브랜드 이름으로 더욱 익숙한 헤르메스는 본래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올림포스 십이신 중 하나다. 제우스와 거인 아틀라스의 딸 마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헤르메스는 신들 간의 소통, 혹은 신과 인간의 소통을 담당하며 제우스의 메시지를 전하는 ‘전령의 신’으로 알려졌다.

전령의 신 ‘헤르메스’

‘소통’이 시대의 화두가 된 지 오래, 그렇다면 ‘소통의 메신저’ 헤르메스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만 필요한 것일까? 음악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정경영 한양대학교 교수는 지난 16일 이화여자대학교 음악연구소에서 열린 ‘휴먼 컬러링’ 공개강의에서 “음악을 듣는 데에도 헤르메스가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음악에 있어 헤르메스는 누구인가? 바로 음악과 청자, 나아가 작곡가와 청자 사이를 연결해주는 음악 해설자 ‘뮤직 큐레이터(music curator)를 의미한다.

음악은 가슴으로 들어야지, 해설이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는 채현경 이화여대 음악학 교수가 당부했듯 “음악과 소통하고 적극적인 청취자가 되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정 교수는 “해설 때문에 음악이 방해되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알고 들으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음악도 아는 만큼 들린다

가령 베토벤의 음악과 슈베르트 혹은 모차르트의 음악을 비교해 보자. 똑같은 종류의 클래식 음악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이들이 지니는 음악적 성격은 대조적이다. 정 교수는 “슈베르트나 모차르트의 음악은 다른 일을 하다가도 들을 수 있지만 베토벤의 음악은 다른 일을 하다가 절대 같이 들을 수 없다”고 규정했다.

슈베르트 즉흥곡 작품번호 90-3번

베토벤 교향곡 제5번 C단조 <운명> 1악장

즉, 전자가 이미 만들어진 장난감과 같이 완성된(been) 음악이라면 후자는 완성되지 않은 레고를 하나의 완성품으로 ‘조합’하는 과정(becoming)의 음악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은 ‘따따따딴’이란 4칸짜리 블록으로 하나의 거대한 집을 짓는 여정이라 할 수 있다.

정 교수는 음악을 알고 들으면 작곡가의 ‘농담’까지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음악은 언어다”라는 말이 있듯이 음악은 많은 부분 언어와 닮아 있다. 쉽표나 마침표 등으로 서로 연결되고 일상의 말로 번역할 때 숨겨진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점 등이 그것이다. 정 교수는 ‘The Joke(농담)‘이라 불리는 하이든의 현악 4중주를 예를 들어 설명했다.

하이든의 현악 4중주 ‘the Joke’

위 음악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뉘어지는데 정 교수는 각각의 구절이 다음과 같은 네 문장의 반복으로 들린다고 말했다.

어제 마트에 가서  / 사과를 사고 / 라면을 산 다음에 / 집에 왔어

잘 들어보면 위와 같은 네 개의 멜로디가  반복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하이든이 던진 농담이란 4가지 이야기를 끊임없이 반복함으로써 청자가 이 언어의 반복을 알아듣도록 하는 데 숨겨져 있다. 네 개의 언어(멜로디)가 하나의 묶음처럼 계속해서 반복되다 보니 이는 마치 하나의 완결된 구성처럼 느껴진다. 음악이 끝난다면 당연히 마지막 구절인 “집에 왔어”로 끝날 것이라 누구나 예상하게 된다. 그러나 하이든은 예상과는 다르게 맨 앞구절, 즉 “어제 마트에 가서”로 곡을 끝내버림으로써 청자를 당황스럽게 만들고 만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면 연주자들이 갑자기 연주를 중단했다는 생각에 어리둥절하는 대신 하이든의 농담을 알아듣고 웃어넘길 수 있으리라.

소통하는 음악, 교감의 무대

정 교수는 음악칼럼니스트뿐 아니라 각종 공연장에서 음악해설가로 활동하기도 한다. 클래식 음악 혹은 뮤지컬 공연의 해설을 주로 담당하는데 해설을 할 때마다 “연주자와 관객이 서로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어떤 특정한 사건과 감정을 서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예컨대,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 중 ‘어떤 개인 날’이란 곡은 연주자와 관객 모두에게 일련의 ‘오글거림’을 안겨준다고 한다. 영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3분 30초 지점에서 소프라노의 감정이 극에 달하며 노래는 끝이 나지만 약30~40초간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이어진다. 일반적으로는 소프라노가 열창을 한 뒤 관객석에서 뜨거운 박수가 터져나오고 소프라노는 우아하게 물러나는 것이 보통인데, 뒤에 연주가 한참 남았으니 불가능한 일이다. 노래하는 이도 한참동안 가만히 서 있고 관객들 역시 박수를 칠 타이밍을 기다리며 서로 불편한 감정을 주고 받는다.  실제로 오페라 현장에 가면 이 순간이 오글거려서 견딜 수 없을 때가 많다고 한다.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 중 ‘어떤 개인 날’

이러한 오글거림을 방지하기 위해 정 교수는 무대를 시작하기 전 미리 짧은 설명을 곁들인다. 가사를 있는 그대로 요약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 속에서 주인공이 처해 있는 상황을 나름대로 번역해준다는 것. ‘어떤 개인 날’은 주인공 초초가 그녀를 버리고 미국으로 건너간 연인을 기다리다가 절망과 실낱같은 희망 속에서 부르는 노래다. 남들은 한 번 떠난 군인은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녀는 믿는다. 언젠가 어느 개인 날, 그가 다시 돌아올 거라고.

“언덕에서 배를 타고 들어오는 그의 모습이 보이지만 난 뛰어가지 않을거야. 그는 내게 와 다정하게 묻겠지? 나의 사랑스런 버터플라이, 날 기다렸나요?”

할 말은 차고 넘치지만 이 많을 말들을 차마 하지 못하고 음악이, 오케스트라가 대신 이야기해줄 것이란 정 교수의 설명은 현장의 오글거림을 교감의 시간으로 채워준다. 정 교수는 “이런 설명으로 그 오글거림이 줄어들진 않겠지만 적어도 떳떳하게 그 오글거림을 즐길 수 있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음악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듣는 것이 맞다. 그러나 귀를 통해 전달된 소리가 머리를 통해 가슴으로 향한다면 때로는 이성이 감성의 불을 더욱 풍부하게 지필 수 있지 않을까? 음악을 듣는 데에도 헤르메스는 필요하다. 음악을 들을 때마다 누군가 친절하게 설명해주길 바랄 수는 없겠지만, 스스로 먼저 작곡가의 마음을 헤아려보고 연주자의 감정을 느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음악과 ‘뜨거운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도 모른다.

KBS 라디오 <장일범의 가정음악> 진행자 장일범의 “클래식 카페”는 다음 회에 이어서 연재됩니다.

희진킴

편집장. 음악과 사람, 공연에 대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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